2025년 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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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쉼은 하느님의 숨과 나의 숨이 맞닿는 고요한 순간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22.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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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겐 지친 뇌를 쉬게 할 쉼과 휴식이 더욱 필요하다. 무더위 속 시민들이 천변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쉬었는데도 더 피곤하다. 잘 쉬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지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야.” 요즘은 ‘잘 쉬는 법’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가 많다. 휴식마저 배워야 하는 시대다.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떠난다. 하지만 일상을 벗어나 돌아와도 더 피곤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진짜 ‘쉼’이란 무엇일까?

요즘 많은 이가 기억력 저하를 걱정한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도 찾고, 현관 앞에서 비밀번호가 떠오르지 않아 당황한다. 혹시 뇌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하루를 돌아보면, 우리 뇌가 이미 과부하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리는 외부 정보 속에 잠시도 쉬지 않고 살아간다. 스마트폰·뉴스·업무·메시지·영상?. 끊임없는 멀티 태스킹은 뇌를 더욱 지치게 만든다.

뇌가 과부하에 걸리면 재부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컴퓨터처럼 ‘종료’ 버튼이 없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도 걱정과 후회·서운함·미련 같은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그 시간마저도 우리는 스마트폰의 영상·짧은 콘텐츠 같은 외부 자극으로 채운다. 쉬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뇌는 단 한순간도 쉬지 못하는 셈이다.

그런데 뇌과학자들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뇌의 특정 영역이 활발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영역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 부른다. 이 회로는 감정 조절·자아 성찰·창의성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자연 속에서 멍하니 있을 때나 기도와 명상 중에 활성화된다. 외부 자극이 차단되면 뇌는 정리되지 못한 기억을 분류하고, 흩어진 생각들을 다시 연결하며, 흐트러진 사고를 복원한다. 그렇게 기억의 저장고는 넓어지고 마음은 이완되며 비로소 회복이 일어난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즉 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밤하늘을 올려다보거나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있기만 해도 뇌는 깊은 쉼에 들어간다. 굳이 멀리 떠날 필요는 없다. 일상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용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쉼은 게으름이 아니다. 존재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회복의 시간이다. 해야 할 일,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로 머무는 시간이다. 한가로움은 나태가 아니라 자유다. 삶을 소중히 여기는 가장 섬세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쉼은 숨과 닮았다. 하느님의 숨결, 곧 영(Spirit) 안에 우리가 살아간다. 우리는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숨결로 살아가는 영적 존재다. 그렇다면 ‘쉼’이란 그 숨결의 본질로 되돌아가는 시간이다.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숨이 내 안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는 진실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숨을 쉬다 보면 들이쉬고 내쉬는 순간 사이에 아주 미세한 멈춤이 있다. 쉼도 그렇다. 쉴 새 없이 움직이기보다 자연처럼 멈춰 서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쉼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을 ‘숨 막힌다’고 말하는 것이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무위(無爲)’는 단순한 비활동이 아니다. 존재의 중심으로 모아지는 자연스러운 고요, 도(道)의 리듬이다. 숨을 가다듬고 쉼을 누리는 방식이다.

진정한 쉼은 우리를 다시 숨 쉬게 해주는 회복의 문이다. “사람은 바쁘게 사느라 자기 영혼과의 대화를 잊는다.” 심리학자 칼 융의 말이다. 쉼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고 존재의 중심으로 되돌아가는 경건한 귀향이다. 숨과 쉼, 그 유사성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성이 묻는 안부>

마음이 힘들 땐 그저 몸만 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뇌도 마음도 따뜻한 돌봄이 필요하거든요. 묵상·기도·사색 같은 고요한 시간 속에서야 비로소 뇌는 진짜로 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도 서서히 평화를 되찾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소소한 순간에도 행복을 느끼게 되지요. 가끔은 심심하고 외로울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조용히 머무는 법을 배웁니다. 묵상과 기도는 우울이나 중독처럼 우리를 흔드는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붙잡아주는 힘이 되어줘요. “아, 좀 쉬고 싶다?.” 이 말이 자꾸 떠오른다면, 그건 몸보다 영혼이 먼저 보내는 신호일지도 몰라요.

단순히 먹고 마시고 노는 것만이 쉼은 아닙니다. 어딘가 멀리 떠나는 여행만도 아니고요. ‘쉬고 싶다’는 마음은 하느님의 숨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영의 속삭임일 수 있어요. 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살리고 계신 하느님의 숨결을 기억하는 시간이니까요. 그 숨결은 바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는 잘 들리지 않아요. 조금은 심심하고 밋밋하고 한가로운 여백 속에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지요. 하느님의 숨과 나의 숨이 맞닿는 고요한 순간, 몸과 마음이 새롭게 깨어나는 참된 쉼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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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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