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마시오.” 유학생 시절,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종종 하신 이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아주 간단한 표현이지만, 수십 평생을 사시며 수많은 어려움과 고초를 겪으신 교황님께서 청년들에게 전해주신 이 말씀에는 큰 힘이 있었고, 그 자체만으로도 큰 용기가 되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맞바람이 불어 배가 파도에 시달리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 삶의 위기와 시련 한가운데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말씀을 건네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움은 어떤 것이며 어디서 오는 것일까? 두려움을 마주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그 대상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두려움이 때로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과도하게 작용해 우리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움츠러들게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대부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그 일 또한 객관적 실체로서보다는 선입견이나 두려움이 가미된 채 대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어떤 병에 걸렸을 때, 병 그 자체보다 병에 대한 선입견으로 괴로워하고 두려워한다. 내가 만약 암에 걸렸다면, 그것을 사형선고처럼 받아들이며 아마도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마저도 고통스럽게 지내야 할 것이며, 이제 곧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서글퍼지고 우울해지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암이라는 병이 실제로는 생각보다 그렇게 두려운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우리 삶에는 질병뿐 아니라 여러 걱정과 근심거리가 늘 존재한다. 어느 누구도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의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은 걱정하는 대상에 대한 과장된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일 자체와 그 일에 대한 두려움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두려움의 대상은 실체 없는 환상일 뿐 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혹이나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과 싸우지 말고 하느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이다. 유혹이나 환상과 싸우면 싸울수록 거기에 더 큰 힘을 부여하게 되며, 그 안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가 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악마의 유혹을 받으실 때(마태 4,1-11 참조) 악마와 끝까지 싸우기보다는 하느님께로 시선을 돌렸으며, 하느님 말씀으로 악마를 물리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마태 4,10) 하느님 말씀에 의탁할 때 악마의 유혹은 힘을 잃고 사라지고 만다.
그렇기에 유혹과 시련의 때, 두려움과 근심에 깊이 빠져있을 때, 그 대상과 싸움을 당장 그치고 하느님을 향해 돌아서자. 눈만이 아닌 몸과 마음을 그분께로 돌리자. 그분은 우리 아버지 하느님이시다. 당신 자녀를 돌보고 보살피시며 끝까지 지켜주는 분이시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우리가 감당 못 할 시련은 없다. 그분은 우리가 시련 중에도 살 수 있는 방법을 늘 마련해주신다. 이미 우리가 걱정하는 일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 놓으셨고, 가는 길마다 천사를 배치해 놓으셨다. 우리는 다만 주님께 의탁하고 주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그 길을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마음이 힘겹고 괴로울 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자.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께 온 마음으로 의탁할 때 마음속 두려움은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