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바야흐로 100세 이상의 인구가 급증하는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한국은 출산율 감소와 평균 수명 증가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광범위하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가 정상성과 유용성 측면에서 노인을 경제 능력이 없는 불필요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데 있다. 소외와 고독, 경제적 결핍과 타인에 대한 의존이 노후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는 부당한 사회적 인식이 그들에 대한 낙인과 차별, 그리고 배제를 정당화하는 원리로 작용한다. “노년에 대한 인식은 죽음 자체보다 더 큰 혐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라는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의 말은 우리가 심리적으로 노년의 삶을 얼마나 끔찍하게 여기는지 잘 대변해주고 있다.
미국 여성 철학자 누스바움(Martha Nussbaum, 1947~)은 혐오의 개념을 ‘원초적 혐오’와 ‘투사적 혐오’로 구분한다. 원초적 혐오는 자기 보호와 생존 수단으로부터 발현된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몸에서 배출되는 분비물이나 부패한 시체·구토·오물·벌레·피 등과 같은 동물성이 자신을 오염시킬 가능성에 두려움을 느낄 때 형성되는 감정이다.
반면 투사적 혐오는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가 반영된 감정으로 역겨운 속성을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전가함으로써 그들을 배척하도록 만드는 감정이다. 혐오는 생명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경계선에 있는 감정으로 그 이면에는 항상 죽음의 불안과 공포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노인은 부패한 동물성을 상기시키기 때문에 보는 이의 불안을 자극하고, 그 불안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배제의 욕망이 생기게 한다.
그 결과 노인을 혐오하는 사회는 젊고 생산력 있는 몸을 이상적인 것으로 상정하고, 이를 동경하게 하고 유지하게 함으로써 노인 집단과 청년 집단을 암묵적으로 분리시키는 인위적이고 상상적인 경계 짓기를 통해 우리 안에 공포를 잠재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졌던 노화의 현상을 삶의 영역에서 몰아내고, 적극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러나 차이를 경계로 바꾸는 경직되고 고정된 모든 영역에는 혐오가 만연하게 된다. 혐오에 맞서려면 노인 스스로가 배타적인 경계 짓기를 극복함으로써 자기혐오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년에 대한 사회의 시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먼저 혐오를 유발하는 ‘연령주의(Ageism)’에 맞서 자신을 지킬 필요가 있다. 의존적이고 취약한 노인들은 무용하고 비인간적 존재라는 경직되고 고정된 세계관으로부터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인간이며,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위상과 가치를 지닌 고유한 존재라는 세계관으로의 관점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그럴 때만이 노인 스스로 내면화한 고정관념에서 빠져나와 사회의 위계적 질서를 깨뜨리고 차별과 배제에 저항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가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투사적 혐오의 패러다임을 깨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다. 누구에게나 노년의 시간은 지상에서 살아가는 시간이자 살아내야 할 시간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마지막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