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는 아이를 기를 때 이유 없이 우는 아이를 보고 ‘왜 그래?’라고 묻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며 괴로울 때 자신을 달래는 지혜를 배웠다고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날들이 계속 이어져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테스형’의 가사처럼 우리는 묻는다. ‘세상이 왜 이래?’ 만약 이 말로 끝이라면, 이 얼마나 허망한 삶일까. ‘왜 이래?’라는 말 대신 ‘다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순간 상황은 변한다. 아니, 상황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삶을 바라보는 눈이 변한 것이다. 그러면 세상도 함께 변한다.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많이 있었다. 그때마다 친구 신학생에게 ‘왜?’하고 묻곤 했다. 매번 답하기 어렵다 보니 신학생이 말했 다. “C’est comme ça.(다 그런 거야, 원래 그래)” 프랑스 사람들이 종종 쓰는 이 표현에 인생의 깊은 지혜가 담겨 있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 다 그런 거야!’ ‘왜?’라고 묻지 않고 인생이란 게 원래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새로운 희망이 밝아온다.
가라지의 비유(마태 13,24-30 참조)를 묵상하며 이 표현이 다시 떠올랐다. 밀을 뿌렸는데 가라지가 자라고 있다니! 살면서 자신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며 이렇게 말하게 된다. 아, 다 그런 거구나. 나의 단점, 허물을 없앨 수 없는 거구나. 단점이나 허물이 없는 사람이 없구나. 그러니 안고 살아야 하는구나. 그것이 인생이지. 다 그런 거지. 나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실망할 때,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생길 때, ‘왜 그럴까?’가 아니라 ‘다 그런 거야’라고 말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다.
다 그런 거야. 이 말에는 세상 이치에 대한 깨달음이 담겨 있다. 이 상황이 끝이 아니니 좌절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다들 그런 일을 겪으며 사는 것이니, 좌절하지 말고 계속 걸어가라. 분명 내일은 새로운 해가 뜨고 새로운 희망이 밝아올 것이니, 결코 좌절하지 말고 희망의 끈을 부여잡아라.
신앙은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시련을 통해 우리를 단련시키고 성장시키신다고. 주님께서는 악에서도 선을 끌어내는 분이시니, 우리의 힘든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우리가 당하는 불의와 악 속에서도, 우리의 죄스런 삶 속에서도, 은총의 길을 열어주시며 우리가 계속 희망을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하신다고. 그러니 ‘다 그런 거야’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다 그런 거야.’ 희망의 순례자들이 마음에 품어야 할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시련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용기를 갖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을 보고 그들이 지닌 희망이 무엇인지 물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 4,18),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인이 될 수 있다.
연세가 들면서 건강과 자신감을 조금씩 잃어가는 신자들을 보며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안타까울 때가 있지만, ‘다 그런 거야’라고 말할 때, 이제는 오직 은총에 의지해야 함을 알고 주님께 맡겨드리게 된다. 알 수 없는 내일을 주님께 맡겨드릴 수 있는 길은 모든 것이 그분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임을 깨닫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분명 그것을 알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