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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적 소통하려면 ‘자기와의 진정한 만남’ 선행돼야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32. 실존적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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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소통하는 가운데 관계를 맺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소통은 상호 대화를 통해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관계 맺으며, 서로의 이해를 도모하는 화합의 과정이다.

관계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서 소통은 삶의 핵심 요소이자 사람들과 함께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가는 동력이 된다. 반면 소통의 부재는 사람을 고립시키며, 자기뿐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 요소가 된다. 잘못된 소통은 관계를 왜곡시킴으로써 화합이 아닌 분열과 분쟁을 일으킨다. 그런데 소통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와의 만남’이다. 사실 자기와 소통하지 않는 자는 타인과도 제대로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누구보다 인간 실존에 있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 사이의 진정한 관계는 ‘실존적 소통(existentielle Kommunikation)’에서 비롯된다. 실존적 소통은 관습과 전통을 따르는 정형화된 소통방식이 아닌 고유한 개별 실존이 자유롭게 행하는 무제약적 행위를 말한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조건은 무엇보다도 ‘자기와의 진정한 만남’에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자기 앞에 자기를 세움과 동시에 자기와 소통하는 가운데 타자와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 이해 없는 소통은 진정한 소통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기 성찰과 반성은 항상 타자를 향해 ‘개방’하려는 의지가 요구된다. 이때 타자는 단순한 나의 소통 대상이 아니라 고유한 인격체로서 스스로 자유롭게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네는 존재다. 소통에서 타자가 자유롭지 못할 때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실존적 소통은 결코 종속이나 지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각자가 자유로운 존재로서 만나는 것이야말로 소통의 가장 기본적 조건 중 하나다. 그러므로 참된 실존적 소통은 두 실존의 자유가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실존적 소통에서 요구되는 또 다른 전제는 자기를 개방하려는 의지와 ‘사랑의 투쟁’이다. 이때 야스퍼스가 말하는 사랑은 서로에 대한 철저한 개방성, 모든 힘과 우위를 배제하는 방식의 투쟁이다. 실존적 소통은 자기 존재와 헌신 사이에 놓인 긴장을 통해 이루어지며, 고독을 전제로 ‘하나’가 되려고 하지만, 결국 둘로 남는 역설이 가능한 방식이다.

무엇보다 실존적 소통에서 중요한 사실은 소통하는 가운데 두 사람 모두 ‘진정한 자기’가 된다는 것이다. 실존적 소통은 나와 타자를 대상으로 서로를 개방하려는 공동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뢰하기보다 권력이나 승리를 목표로 상대를 제압하고 지배하려는 투쟁방식의 소통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실존적 소통에서 두 사람은 사회적 지위나 신분의 위치를 떠나 대등한 관계로 만나며, 무엇보다도 각자 고유한 존재로서 상호 존중하는 가운데 자기 실존을 획득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 만큼 실존적 소통에서 참된 관계를 위해 타인에게 쏟는 나의 시간은 결코 자기를 버리는 시간이 아니며, 오히려 참된 자기로 채우는 충만한 시간이다. 완고하고 폐쇄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타자와 맺는 참된 관계란 자유로서 무한히 열려 있는 ‘진정성’이며, 이는 자기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통해 더 넓은 실재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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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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