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불’과 ‘세례’를 말씀하시고, 이어서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불과 세례의 말씀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실제 불을 지르시겠다는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구약 성경에 의하면 ‘불’은 하느님 말씀을 의미합니다.(예레 20,9; 23,29) 따라서 불을 지른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러 오셨다는 뜻이고, 불이 타오른다는 것은 말씀이 온 세상에 퍼져나간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또 신약 성경에서 ‘불’은 하느님 나라가 오기 전에 세상이 겪게 될 종말의 심판을 뜻하기도 합니다.(마르 9,48; 마태 3,11; 7,19; 루카 3,16) 따라서 세상 구원을 위해 겪어야 할 종말의 심판이 곧 올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은 파괴하는 불이 아닌 인간 마음속을 밝게 비추고 따뜻하게 데워주며, 나쁜 것을 태우고 정화시켜 정결하게 하는 성령의 불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는 예수님께서 요한의 세례를 부정하시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이는 구원을 위해 받으셔야 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심으로써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께서 치르셔야 할 과정으로 겪게 될 분열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신앙인으로서 겪어야 할 갈등과 분열을 각오해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진리와 사랑과 정의와 자유와 평화를 이루시는 활활 타오르는 불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적인 마음에 불을 지르고 태워 없애 참 평화를 이루시고자 우리를 일깨워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속적인 욕망이나 욕심에서 얻어지는 거짓 평화를 멀리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가까울수록 그리스도의 참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하느님이 아닌 것을 하느님으로 여기고, 선이 아닌 것을 선으로 가장하며, 옳은 것이 아닌 것을 옳은 것으로 위장하고,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선과 옳음과 진리를 지키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 실천하려면 혼란과 분열을 각오해야 합니다. 옳은 길을 가기 위해 반대 받는 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박해와 고통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당당하고 단호하게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참 평화를 위해 온갖 거짓 평화와 맞서서 과감하게 깨뜨리며 용기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시련과 분열 속에도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위해 선택해야 할 것은 정의와 진실과 사랑입니다. 이기심과 안락함의 거짓 평화를 버리고 참 평화를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제도가 바뀌고 조직이 교체된다 해도 반드시 세상이 좋게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의 주체는 인간이기에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변화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은 변화의 불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변화에 앞서, 먼저 내가 바뀌는 변화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세상 구원이 이루어지는 변화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불을 우리 각자의 생활 안에서 일으키라고 깨우쳐 주십니다. 만일 지금 일상생활에서 신앙인답게 살면서 겪는 어려움과 분열이 없다면, 그것은 세상 것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신앙인은 세상과 신앙의 중간에서 마음에 맞는 것을 그때그때 선택하며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