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29년경, 이탈리아 출생 및 튀르키예 선종, 황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견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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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성녀. 굿뉴스
헬레나 성녀는 그리스도교 대탄압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입니다.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기록에 따르면, 헬레나는 여관 주인의 딸이었습니다. 270년경 훗날 황제가 된 로마의 장군 콘스탄티우스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콘스탄티우스는 289년 정치적 이유로 헬레나를 버리고, 그리스도교 박해자 중 한 명인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의붓딸 테오도라와 결혼해 292년 황제 휘하의 카이사르(Caesar, 군주)가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던 헬레나는 당시 박해를 받고 있던 그리스도교에 관해 알게 됩니다.
306년 콘스탄티우스가 오늘날 영국 잉글랜드의 요크에서 숨을 거두자 아들 콘스탄티누스는 아버지에 이어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황궁이 있는 독일의 트리어로 모셔와 그녀를 ‘아우구스타’(Augusta), 즉 황후라 부르도록 했습니다.
312년 10월 12일 ‘밀비오 다리 전투’에서 막센티우스를 격파하고 승리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에 입성했습니다. 그리고 60세가 넘은 어머니 헬레나를 설득해 세례를 받도록 했습니다. 헬레나는 개종한 순간부터 신앙 생활에 전념했고, 그리스도교를 널리 전파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노력에 힘입어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반포해 로마 제국 내에서 그리스도교를 인정하고, 투옥된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를 석방했습니다. 국가에 빼앗긴 교회 재산도 반환했습니다.
헬레나는 326년 고령에도 성지 팔레스티나(팔레스타인)로 순례를 떠났습니다. 교회사가인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오에 의하면, 헬레나는 ‘왕 중의 왕’이신 하느님께 충성을 바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교회에 막대한 후원금을 내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선행에 헌신하며, 그리스도교의 일을 돕는 데 적극 나섰습니다. 특히 구세주의 발자취에 경배하기 위해 아들의 도움으로 예루살렘 성지 곳곳에 수많은 성당을 세웠습니다. 대표적으로 베들레헴의 ‘주님 탄생 기념 성당’과 올리브 산의 ‘주님의 기도 성당’,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루살렘의 골고타 언덕 ‘주님 무덤 성당’ 등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주님 무덤 성당을 지을 당시 예수님께서 못 박히셨던 성십자가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세 십자가가 발굴되자 헬레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십자가를 찾기 위해 죽음에 임박한 한 젊은이를 모든 십자가 위에 올려놨는데, 한 십자가 위에서 그 젊은이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성십자가를 발견한 헬레나는 이를 셋으로 나눠 하나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보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의 주교인 마카리오 성인에게, 나머지는 로마로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헬레나의 상징은 성십자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