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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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죽음에서 오는 상실 극복하는 슬픔 승화 과정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34. 애도(哀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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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표현할 때 특별히 ‘애도’라는 말을 사용한다. 애도는 일반적으로 타인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이나 불행 혹은 고통을 슬퍼하고 기억하는 정서적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철학상담에서 애도는 특히 사랑하는 이와 사별 후 겪게 되는 상실의 고통을 견디고 극복하는 치유의 과정을 일컫는다.

플라톤의 「파이돈」에선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가 대성통곡하는 제자들에게 슬픔을 자제하고 숙연한 가운데 죽음을 맞게 해 달라고 권고한다. 이렇듯 슬픔은 오래전부터 억제해야 할 부정적인 감정으로 각인되었고, 죽음을 슬퍼하고 기억하는 애도의 행위 역시 그 중요성이 간과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감정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함께 주목받게 되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애도와 멜랑콜리」에서 애도를 상실에서 오는 슬픔을 끊어내는 심리 과정으로 이해한다. 애도(Trauer)와 멜랑콜리(Melancholia)는 모두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로 고통받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애도가 현실 인식을 통해 상실의 원인이 되는 대상에 대한 애착과 집착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자아를 찾는 심리적 과정이라면, 멜랑콜리는 정상적인 애도의 실패로 자기 비하·죄책감·망상이 나타나는 비정상적 증후를 뜻한다. 애도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 상실의 대상에게로 몰입된 리비도가 철회되는 순간(망각)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특성이 있는 반면 퇴행인 멜랑콜리는 그렇지 못하다.

성공한 정상적인 애도와 실패한 병적인 애도를 구분하는 프로이트와 다르게 자크 데리다(1930~2004)는 애도에서 성공과 실패를 따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애도의 본질은 상실의 대상을 잊는 소극적이며 부정적인 태도의 ‘망각’이 아닌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태도의 ‘기억’에 있음을 강조한다. 기억을 통해 죽은 이들이 나의 내면에 자리 잡으면서 이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이런 애도를 통해서만 비로소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인을 잃은 슬픔과 상심에도 불구하고 고인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 즉 ‘부정의 부정’을 통해 죽은 이와 긍정적인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종합의 변증법적 과정이 바로 애도다.

롤랑 바르트(1915~1980) 역시 부재의 상실에서 오는 ‘영적 무기력’을 반전시키는 계기가 ‘기억’에 있음을 강조한다. 망각은 고인을 이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반면, 오로지 기억만이 죽음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뛰어넘어 고인을 바로 ‘지금 여기’로 현존시킬 수 있는 만큼 우리는 설사 자살과 같은 경우라 할지라도 더 능동적인 태도로 고인을 기억하며 상실에 맞설 필요가 있다. 사실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이야말로 고인의 존재를 바로 지금 여기에 현존하게 하는 ‘힘’이자 ‘살아있는 자의 책무’다. 이는 동시에 고인에 대한 기억 속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관계 정립을 통해 자기를 치유하는 구원의 길이기도 하다. 애도는 죽음에서 오는 상실을 극복하는 슬픔의 승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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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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