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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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 “참 괜찮은 사람이었어” 정도면 어떨까?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28.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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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삶에서 덕은 규범을 넘어 따뜻한 선택을 하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힘이다. 좋은 우정은 단순한 유대나 취향 공유를 넘어 영혼의 길동무가 되어주는 것이다. OSV

“죽음을 맞이한 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장례식장에 모인다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대학 시절, 한 교수가 강의실에서 던진 이 질문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맴돌았다. 많은 학생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좋은 사람.” 성공이나 명예·업적보다 먼저 떠올린 것은 ‘좋은 사람’이었다. 결국 인생의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가’일 것이다.

그런데 좋은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버클리에서 연수 중 만난 P라는 미국인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그를 “참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책임감 있고 성실하며,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곁에는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끝까지 질문하며 올바른 답을 찾아냈다. 그의 곁에 앉으면 자연스레 긴장이 되었고, 스스로를 점검하게 되었다. P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도덕적 흠이 없고, 책임감도 강했다. 그러나 가까이하기에는 조금 거리감이 느껴졌다. 자기 역할에는 충실했지만, 잠시 멈춰 타인과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누는 일에는 서툴렀다.

반면 지인 V는 늘 “착해서 탈”이라는 말을 들었다. 순하고 따뜻했으며, 얼굴에는 늘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약속을 지키지 못하기도 했고, 갈등을 피하려 지나친 배려로 스스로 지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였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놓이고 긴장이 풀렸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의 착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편안함은 사람들을 자연스레 끌어당겼다.

이 두 사람을 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좋음은 도덕적 올바름과 책임감으로 세워지지만, 착함은 따뜻한 배려와 친밀함으로 완성된다는 점이다. 좋은 사람은 신뢰를 주지만 다가서기 어렵고, 착한 사람은 허술해 보여도 곁에 있고 싶은 존재다.

그렇다면 진정한 덕은 무엇일까. 아마도 좋음과 착함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 있을 것이다. 진정한 ‘좋음’이란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리며, 타인에게 편안함을 주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배려일 것이다. 진정한 ‘착함’은 단순히 유순하고 얌전한 것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때로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배려다. P가 보여준 인간적 올바름과 V가 보여준 인간적 따뜻함. 이 두 가지가 만나야 비로소 덕이 완성되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단순한 규범 준수가 아니라, 매 순간 상황 속에서 올바른 선택을 찾아내는 힘으로 보았다. 덕은 차가운 의무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조화를 이루게 하는 따뜻한 지혜다. 이런 덕이 관계 속에서 꽃필 때 우정이 된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사랑을 일방적 선행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우정이라 말했다. 선한 의지가 있더라도 그것이 따뜻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사랑과 덕으로 자라나기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우정이라는 말은 벗과 나누는 정, 곧 교감을 뜻한다. 오랜 시간 쌓이고 스며드는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마음의 신뢰이기도 하다. 영어의 friendship 역시 단순한 동료 관계를 넘어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지지하는 사랑의 관계를 말한다. 우정은 삶의 동반자를 만들어가는 덕의 한 모습이며, 영혼의 길벗을 얻는 선물이다.

결국 책임을 다하며 도리를 지키는 좋음과, 타인의 마음을 품고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는 착함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덕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좋음은 삶을 단단히 세워주고, 착함은 삶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좋음과 착함을 아우르는 길이 바로 인간다운 길일 것이다.

어쩌면 좋은 사람이란 P도 V도 아닌 그 둘 사이를 오가며 고민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마지막 순간,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아마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함께 있어서 괜찮았던 사람 정도면 어떨까? “참 괜찮은 사람이었어.”



<영성이 묻는 안부>

덕이란 단순히 규범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따뜻한 선택을 하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힘입니다. 규범이 움직이지 않는 차가운 돌이라면, 덕은 흔들리며 피는 향기 나는 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웃과 함께 흔들리면서 살아갑니다. 좋은 우정은 단순한 유대나 취향의 공유를 넘어, 영혼의 길동무가 되어줍니다.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일까요? 살레시오 성인은 사랑이라고 해서 모두 우정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사랑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정의 조건은 단순히 주고받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서로 주고받는 사랑에 깨어 있어야 하며, 서로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정은 친절과 겸손, 관대함과 온유, 때로는 희생이라는 작은 덕을 나누며 성장합니다. 그것이 하느님께로 연결될 때, 비로소 완전한 우정이 됩니다. 지상에서 천국으로 이어지는 사랑만큼 완전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함께 걸으며 자기중심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이미 충분히 좋고 착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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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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