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영토의 절반은 광야입니다. 우리나라 땅이 얼마나 좋은 금수강산인지 실감 나게 해주는 곳이지요. 이스라엘의 중간에 자리한 예루살렘 아래쪽부터 유다 광야가 펼쳐지고, 그 밑으로 네겝 광야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네겝 광야는 이스라엘의 최남단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곳에는 ‘팀나’라는 유적지가 자리해 있습니다. 팀나는 기원전 1200~900년경 구리 광산으로 유명하였습니다. 팀나에는 옛 광산의 흔적만이 아니라 과거 이집트인들이 지은 하토르 신전도 남아 있는데, 그곳에서 12cm가량의 구리 뱀이 발견되어 민수기 21장 4절에서 9절의 사건을 상기시켜 줍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산을 중심으로 머물다가 민수기 10장 11절과 12절에서 광야 행진을 시작합니다.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증언판을 모신 성막에서 구름이 올라갔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시나이 광야를 떠나 차츰차츰 자리를 옮겨 갔다.” 이때부터 민수기는 21장까지 가나안의 입구인 모압 벌판까지 가는 백성의 여정을 다룹니다. 탈출기 12장 1절에서 2절에 따르면,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때는 그 전 해 첫째 달입니다. 그렇다면, 백성은 시나이 광야에서 일 년 남짓 체류하고 민수기 10장 12절부터 가나안을 향해 길을 떠난 셈입니다.
그런데 도중 광야 체류가 40년으로 늘어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민수기 14장에 따르면 모세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대표들을 정탐대로 꾸려 약속의 땅을 미리 탐사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탐대는 탐사에서 돌아온 뒤, 가나안 원주민들이 너무 크고 강해서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며 백성의 의기를 꺾어 놓습니다. 백성은 그들의 보고에 부화뇌동합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가나안 땅 약속을 믿지 못하는 백성이 좀 더 단련될 필요가 있다고 여기시어, 광야에서 더 머물게 만드신 것입니다. 광야에서 더 체류하며 당신에 대해 더 배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광야 생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 사건이 터집니다. 양식과 물이 없다고 백성이 또다시 불만을 터뜨리자, 주님께서 그들을 불 뱀으로 벌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갓 탈출했을 때만 해도 하느님께서는 백성을 관대히 대하시고 불평해도 해결책을 주셨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오래 머무는 동안 주님의 보살핌 속에 단련 받고 그분의 능력을 볼 수 있었는데도 여전히 불신과 반역을 일삼으므로 엄하게 다스리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님께서 일부러 불 뱀 몇 마리를 보내어 백성을 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디 광야는 불 뱀과 전갈이 사는 곳입니다.(신명 8,15; “그분은 불 뱀과 전갈이 있는 크고 무서운 광야, 물 없이 메마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그렇다면 이는 감사를 모르는 백성이 불 뱀에게 공격당하도록 내버려두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제야 백성이 회개하며 모세에게 중재를 청하자 하느님께서 치유법을 알려주시는데, 백성을 문 뱀의 형상을 만들어 기둥에 달면 그걸 바라보는 자마다 낫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징벌 도구였던 뱀이 이번에는 치유 도구가 되어줌으로써 사건이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런 동종요법(同種療法)이 이집트 유물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옛 이집트인들은 뱀의 형상을 부적으로 달고 독뱀이나 악령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뱀의 형상으로 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파라오 왕관에 달린 코브라 휘장(우래우스)이 예입니다. 적이 나타나면 왕관의 코브라가 파라오를 보호해 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당시 광야에서 뱀에게 물린 백성은 이집트 탈출 1세대와 그 후손들이므로 뱀의 형상이 힘을 발휘한다고 믿은 이집트의 전통을 알고 있었을 터입니다. 그래서 불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면 뱀의 추가 공격을 막고 상처까지 치유할 수 있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법합니다. 이때 모세가 ‘구리’로 뱀의 형상을 만든 건, 그가 백성과 더불어 가나안으로 향하던 경로에 구리 산지 ‘팀나’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팀나는 당시 백성이 떠나온 ‘호르산’과 그들이 향하는 ‘갈대 바다’(민수 21,4 참조) 사이의 지점이라 접근이 쉬웠을 터입니다.
구리 뱀 사건은 이후 요한복음 3장 14절에 다시 등장합니다. 십자 나무에 달리신 예수님을 기둥 위의 불 뱀에 견줍니다. 곧 요한복음의 저자는 기둥에 달린 구리 뱀을 바라보면 살 수 있게 되었던 민수기의 사건을 예형으로 삼아, 죄로 말미암아 죽음을 선고받은 인류도 십자가에 현양(顯揚)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속죄하면 구원되리라는 가르침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글 _ 김명숙 소피아(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