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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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연중 제26주일,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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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아모스 예언자를 통해 ‘걱정 없이 사는 자들, 마음 놓고 사는 자들!’이 불행하다고 말씀하십니다.(아모 6,1 참조)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사는 삶은 대부분의 사람이 꿈꾸는 행복한 삶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히려 이러한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불행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아모 6,6 참조) 곧 하느님과의 계약, 하느님의 뜻에 따라 충실히 살아가는 일에 소홀히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받은 그 사랑으로 사람들과 피조물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먹고 마시고 누리는 것에 관해 관심과 시선을 집중하는 데에서 하느님과의 계약과 하느님의 뜻에 더 깊은 관심과 시선을 두어야 함을 일깨워 주십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말씀을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일러주십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는 한 편의 단편 드라마를 보는 느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물론 ‘어떻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느냐? 그리고 죽음 이후 어떠한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너무나 다릅니다. 


부자와 라자로는 너무나 다른 삶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온갖 호화로움을 누렸던 부자는 죽음 이후에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편, 라자로는 가난하고 종기투성이의 몸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단순히 몸과 마음에 병이 든 것이 아니라, 인간 이하의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워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식탁에서 떨어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은 개들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라자로는 개와 같은 처지의 비참함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으며 성가시게 합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라자로는 죽은 다음 아브라함 곁에서 위안의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가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저의 갈증을 식혀주게 해 주십시오”(루카 16,24 참조)라고 간절히 청하고 있습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뒤바뀐 상황이 단순히 부자이기 때문에 죽음 이후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고,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에 죽음 이후 위안의 삶을 살게 된다는 말씀일까요? 주님께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싶으실까요? 


부자가 부자인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 선물 받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서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쌓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자의 관심과 시선이 어디에 있느냐에 있습니다. 


부자의 집 대문 앞에는 매일 종기투성이의 라자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라자로를 보지 못했습니다. 라자로는 늘 거기에 있었지만 부자의 관심과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고, 라자로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라자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은 하느님을 잊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나의 사랑입니다. 부자는 부를 통해 자신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사랑으로,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부자’(루카 16,19)에게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나눔의 신비, 사랑의 신비를 실천하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은 부유하지 못하고, 그래서 무엇인가를 나누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부유해지면 그때 가서 나누며 살겠다는 마음을 지닐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상황이 부유하다고 여길 수도, 또는 가난하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자신의 상황에서 나눌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역량 안에서 나눔이 가능합니다. 물질적으로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더라도, 기도와 위안의 말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주님의 관심과 시선으로 하늘나라에서 맛볼 행복을 미리 맛보는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며’(1티모 6,14)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는 삶을 삽시다!



글 _ 조성풍 신부 (아우구스티노·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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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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