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30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베드로의 증언으로 첫 복음서를 집필한 마르코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1632~1677)는 유다인이었지만 자신과 같은 유다인들을 비판했기 때문에 큰 미움을 받았다. 그는 유다인 사회에서 쫓겨나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다. 스피노자는 도망자처럼 피해 다니며 안경원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어려운 생활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주변으로부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느나며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는 데카르트 철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수학과 자연과학 실력도 뛰어났다. 그의 철학적 사상이 범신론이라 철학계에서도 많은 비난을 받았다.


스피노자는 사람들의 비난에 개의치 않고 자기 일에만 몰두했다. 그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자신이 할 일을 다 하는 성실한 철학자였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그의 말은 오늘날에도 많은 영감을 준다. 커다란 성과를 위해서는 주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할 일에 집중하는 인내와 노력이 중요하다.


마르코는 서기 70년 초 복음서 중 제일 먼저 나온 마르코복음을 썼다. 마르코가 살았던 예루살렘의 집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집회를 가졌던 곳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최후의 만찬을 가진 장소도 마르코의 집이었다고 보는 이도 있다. 복음서를 집필한 장본인이지만 그의 삶에는 굴곡이 많았다. 


마르코는 삼촌인 바르나바 사도와 바오로 사도와 함께 야심 차게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마르코는 전도 여행 중 팜필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팜필리아는 서아시아 남부 지역으로, 지중해에서 타우루스산맥까지 뻗어 있다. 어린 마르코가 힘겨운 전도 여행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실제로 나는 성지순례 중 타우루스산맥을 가 본 적이 있는데 그 웅장함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당시 여행은 걸어서 험한 산맥을 넘어야 했으니, 누구나 목숨에 위험을 느끼고 겁이 났을 것은 당연하다. 마르코의 이런 행동은 제2차 전도여행 전에 형제처럼 돈독했고 늘 뜻을 같이했던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바르나바는 마르코도 같이 데려가려고 하였지만 바오로는 팜필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간 사람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두 사람은 감정이 격해져서 심하게 싸우고 서로 갈라졌다. 


이 사건과 제1차 전도여행에서 중도 포기한 일로 마르코는 많은 비난과 큰 자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마르코는 심기일전하여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바오로도 실라를 데리고 소아시아로 떠나서 많은 교회를 창설했다.(사도 15,36-41 참조)


마르코는 로마에서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일했고, 예수님의 활동과 말씀을 들은 대로 정확히 기록했다. 마르코는 최초의 복음서를 집필하여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마르코는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했으며 그곳의 초대 주교를 지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5-09-3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9. 30

잠언 4장 6절
지혜를 저버리지 마라. 그것이 너를 보호해 주리라. 지혜를 사랑하여라. 그것이 너를 지켜 주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