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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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연중 제29주일, 전교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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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스카리옷 유다를 제외한 열한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갈릴래아의 한 산에서 만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예루살렘이 아니라 굳이 갈릴래아에서 제자들을 만나신 이유를 교부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제자들과 함께하시던 바로 그분이심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이민족들의 갈릴래아”(마태 4,15)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모든 민족의 사도로 삼으시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 가운데 일부는 주님을 뵙고도 부활을 의심합니다. 이것은 객관적 검증의 영역을 벗어난 초자연적 사건인 부활을 믿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와 보는 것이 반드시 믿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사실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조심해야 할 일인지도 모릅니다. 물이 담긴 유리컵에 꽂아 둔 젓가락이 휘어 보이듯이 우리의 눈은 종종 우리를 속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사도들의 이러한 모습이 실망스러운 이들은, 부활을 의심한 제자들은 사도들이 아니라 일흔두 제자 중 일부였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제자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버려두고 달아날 때까지 줄곧 그들의 약한 믿음에 대하여 말해왔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의심이 꼭 부정적인 것만도 아닙니다. 의심하던 제자들이 목숨까지 바쳐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게 될 때, 그들의 증언은 더 강한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을 만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 말씀을 남기십니다. 마태오복음의 정점인 이 말씀은 명령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는 먼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은 사실을 밝히시며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다니엘의 예언(다니 7,14 참조)이 사람의 아들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알리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제자들에 대한 격려입니다. 


이전에 마태오복음 10장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방인들의 땅에는 가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안에서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온 세상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지니게 되심으로써 서로 다른 언어, 문화, 관습을 가진 모든 인종과 민족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인 선교가 가능하게 되었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선교에 나서라는 말씀이겠습니다.


그리고 마태오복음 28장 19절에서 20절까지의 문장 구조상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주시는 사명은 하나입니다. 곧 모든 민족을 주님의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로 삼는 것에는 두 가지가 포함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근본적으로 죄의 용서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니 세례를 베풀라는 말씀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우리말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번역된 표현은 정확하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안에서’입니다. 이 표현은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친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제자로 삼는 첫 번째 일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하여 죄를 용서받고 원죄 이전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과 함께 거닐었듯이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온전한 친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라는 명령입니다.


제자로 삼는 두 번째 일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워 지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랑의 이중 계명,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론적인 가르침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스스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스승이 될 때 가능합니다.


마태오복음의 마지막 구절인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겠다는 예수님의 약속 또한 첫 구절처럼 제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예수님의 명령이 단지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주어진 것임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대상인 ‘너희’는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마치 모든 길이 언젠가는 하나로 만나듯이 지금은 갈라진 모든 민족이 결국 주님의 집을 향하여 몰려올 것을 예언합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충실히 따를 것이라고 예언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고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인터넷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한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을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발에만 의존해야 했던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글 _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동교구 농은수련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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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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