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유명 소설가 스탕달(마리앙리 벨, 1783~1842)은 변화와 혼란이 극심한 시대에 살았다. 그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고, 부유했지만 보수적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는 자유롭고 계몽주의자였던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게 되었다. 1800년 나폴레옹 군대에 입대해 이탈리아 원정군 장교로 이탈리아에 가면서 예술과 문화, 특히 문학과 음악, 미술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는 그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다.
그는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고 보수화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공직에서 점차 멀어져 문학 활동에 몰두하였다. 1810년대에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오가며 문학과 미술, 음악에 관한 평론을 발표하였고 ‘스탕달’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문학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애정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훌륭한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을 힘껏 사랑했던 경험의 덕택이라고 고백했다. 남에게 정성껏 사랑을 베풀다 보면 세상을 보는 눈도 넓고 따뜻해지기에 마음도 행복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은 더욱 값지고 보람차다.
그런데 사랑과 호의를 받는 것도 경험이 없거나 상처가 많으면 힘들어하기도 한다. 예수님이 일행과 함께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다 지쳐 야곱의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대표적이다. 당시에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접촉과 대화도 금지되어 있었는데 예수님이 그녀에게 물을 청한다. 그래서 여인은 “당신은 유다인이고 나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사막 지방에서 아침나절이 아닌 한참 더운 정오에 물을 길으러 나온 것은 분명히 사람의 눈을 일부러 피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사마리아인들은 팔레스타인 사마리아 지방에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의 한 분파였다. 기원전 721년경 앗시리아가 사마리아 지역을 점령하고 식민지정책으로 잡혼을 실시했다. 그래서 사마리아 지역은 잡혼으로 민족 간의 피가 섞이게 된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지역의 사람들을 이방인이라 부르게 되었고, 원수지간처럼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만약 당신이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나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것이오”라며 말을 이어간다.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에 그녀는 솔깃해졌다. 예수님은 그녀가 혼인을 다섯 번이나 했고, 지금 함께하는 사람도 남편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녀는 단번에 자신의 과거를 정확히 알아맞히자 깜짝 놀라며 예수님을 분명히 예언자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이 그녀의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이야기를 나눈 것에 감동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눈이 싫고 무서워서 일부러 피했던 그 여인을 한 인간으로 대해주셨다. 편견 없이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건네고 소통하는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