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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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의 어른 됨을 따라가며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119) 추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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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은 역대급으로 긴 연휴였다. 필자는 본당 신부가 아니기에 매년 설날과 한가위 때 본가에 가서 명절을 지내는 행운(?)을 누린다. 아침 일찍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온 다음, 아버지와 함께 미사 가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명절 때 갈 수 있는 고향이 있어 감사하다. 어머니는 안 계시지만, 아버지께서 그 자리를 늘 지켜주시고, 그리운 가족들도 만나고, 특히나 본당 교우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인사를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동창 신부한테서 한가위 미사 강론을 부탁받아 어떤 말씀을 드릴까 고민하다, ‘금쪽같은 내 신앙’에 쓴 ‘어른이 된다는 것’을 나누며, 신자들께 어른으로 그 자리를 한결같이 지켜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자매님께서 보내주신 이채 시인의 ‘어머니께 드리는 한가위 편지’를 읽으며, 하느님 품으로 가신 어머니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껴 강론에 넣기로 하였다. 그러다 문득 시상이 떠올라 ‘당신은 어른이십니다’라는 시를 지었다.

미사 후 필자의 강론에 많은 분이 공감해주셨다. 한 자매님께서도 다음과 같은 따뜻한 문자를 보내주셨다. “신부님! 이제야 고요한 시간을 갖게 된 제게 어른다움에 대한 귀한 말씀 선물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들과 며느리, 딸과 예비사위를 불러 어른답게, 어미답게 정성 담은 집밥과 따뜻한 추석을 안겨주고자 분주한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소망처럼 어른이 되긴 쉽지 않았습니다. 어제, 오늘 저 혼자만 종종 분주하고 남편은 세상 등진 듯 책을 보다, 잠을 청하다 너무 한가로워 보여 그만 아침에 짜증을 내고 말았습니다. 이런 분위기 탓에 딸은 못내 속상해했고요. 끝까지 참고 사랑으로 불만을 이겨내기가 어찌 이리 어려운지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싶은 마음에 공연히 구름에 가려 제 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보름달을 찾아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다 신부님 글 읽고 위안을 받고 반성도 합니다.”

갖가지 일로 분주했던 마르타, 그 마음을 인정받지 못해 서운했던 마르타, 그래서 예수님께 그 마음을 표현했던 마르타. 문득 마르타의 마음에 공감이 가기 시작한다. 사실 마르타가 없으면 집안일은 돌아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주히 일하고 챙기고 세심히 돌봐주는 마르타가 있기에 세상은 인간미 넘치고 살맛 나는 것이 아닐까. 그 덕에 마리아같이 누군가는 주님 발치에 앉아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지 않나. 마르타는 용기 내어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고, 핀잔 섞인 말씀도 들었지만, 그 또한 마르타가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아니겠는가. 예수님은 그러한 마르타의 어른 됨을 축복해 주셨을 것이다. 음식을 얻어먹기 위해서라도!

결국 어른이란 너그러움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마리아보다는 마르타가 더 앞서가는 것 아닐까. 언젠가 마리아도 언니처럼 어려움을 겪으며, 어른이 되는 것을 배워나가지 않을까. 어른이란 귀로 말씀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살아가면서 ‘되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론을 준비하며 지은 부족한 시를 나눈다.

“당신은 어른이십니다. 힘이 빠지고 병이 드신 당신, 몸과 마음이 고장 난 당신.

나이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힘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약해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은 어른이십니다. 그저 묵묵히 그 자리에서 세월을 살아내시고 세대를 이어주시니,

존재만으로 우리 마음을 숙연케 하시고, 든든함과 위로를 주시니, 당신은 참 어른이십니다.

참 멋지게 늙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도 감히 고백하고 싶습니다. 당신처럼 멋지게 늙고 싶다고.”


한민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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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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