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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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법칙 아닌 ‘가치’ 규범으로 스스로 삶과 행위 결정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40. 개인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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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법칙(individuelles Gesetz)’은 삶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삶과 유리된 보편 ‘법칙’에 의존하기보다 ‘가치’의 규범성에 따라 개인이 스스로 자기 삶과 행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짐멜(1858~1918)의 도덕법칙이다.

그에 따르면 도덕적 당위는 삶의 현실을 초월해 개인에게 요구되는 ‘보편법칙’이 아닌, 삶의 과정에서 생성하고 소멸하는 ‘개인법칙’에 근거를 둔다. 개인법칙에 따른 도덕 판단은 각자 고유한 상황에서 그 타당성과 기준에 따라 주관적으로 결정된다. 이는 당시 칸트(1724~1804)가 주장했던 보편타당한 이성이 부과하는 ‘이상’을 실현하는 합리적 방식의 ‘의무 윤리학’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새로운 주장이다. 짐멜은 무엇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 과정으로서의 삶이 형식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의 도식화로는 결코 규정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도덕법칙은 보편과 객관이 아닌 개별과 주관에 의해 오로지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런 법칙이 모두에게 고루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도덕법칙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짐멜은 기존 사고에서 개인적인 것과 주관성의 유착, 초개인적인 것과 객관성의 유착을 제거하고, 오히려 ‘개인적인 것’과 ‘객관성’의 긴밀한 결합을 통해 개인의 객관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짐멜에 따르면 도덕적 당위는 보편적 질서의 목적적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행위하는 주체에 근거하기에 도덕법칙 역시 바로 그 주체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 즉 도덕법칙은 자기 행위에 스스로 책임지는 ‘총체적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주체’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짐멜이 말하는 도덕적 주체는 변화하는 ‘삶의 연속성’ 안에서 기존 법칙에 예속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안에서 도덕적 당위를 발견하는 ‘책임의 담지자’다. 그리고 도덕적 당위는 그 자체로 삶의 일부로서 삶의 연속성 안에 있지만, 또한 항상 ‘형식’을 담지하고 있다.

이렇게 연속적인 삶의 흐름 속에서 형식과 함께 도출된 도덕규범은 최종적이고 경직된 채로 삶에 대립해 있기보다는 오히려 삶으로부터 그때마다 마땅히 행해야 할 당위로서 우리에게 부과된다. 이는 결국 연속적인 삶의 흐름으로부터 도출되는 형식 안에서 우리의 도덕법칙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도덕법칙이 이렇게 삶의 매 순간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결정은 임의적이기보다는 개인성과 법칙성이 결합한 삶 전체성에서 오는 객관적인 통찰에 근거한다.

짐멜의 개인법칙은 “일체의 단순한 보편화에서 해방되고 자유롭고 한결같이, 그러나 동시에 법칙의 존엄함과 광대함, 그리고 단호함을 견지하면서 순전히 개인적인 삶을 형성하는 것”이다. 개인법칙은 무엇보다 외부의 억압에서 벗어나 최대한 개인의 고유한 가치와 이상, 그리고 그 기준과 척도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도덕적 ‘의지’와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우리가 올바르고 책임감 있는 자기실현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도덕적 주체가 되는 길은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무조건 따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적이며 책임감 있는 도덕 주체로 거듭나는 데 있다. 그리고 형식적인 굴레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 역시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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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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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사탕2025. 10. 15

시편 51장 11절
저의 허물에서 당신 얼굴을 가리시고 저의 모든 죄를 지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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