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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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의 위로’ 넘어 ‘삶의 변화’ 부르는 기도가 되기를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33. 묵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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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 기도는 ‘느낌의 위로’를 넘어 ‘삶의 변화’를 부르는 기도가 돼야 한다. 묵주를 쥔 손이 타인에게 열린 손이 될 때, 비로소 기도는 삶이 된다. OSV

버스나 전철에서 묵주 기도 하는 사람을 보면 반갑다. 그날도 전철 안에서 한 중년 여성이 눈을 감고 묵주알을 돌리고 있었다. 경건하고 평온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한 젊은이가 인파에 떠밀려 휘청이며 그 앞까지 밀려갔다. 순간 그는 눈을 번쩍 뜨고 불쾌한 표정으로 민망해하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 손에서 묵주알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입술로는 기도하면서도 마음은 닫혀 있는 내 안을 보는 듯 부끄러웠다.

산책하거나 여행할 때, 심심하거나 불안할 때 묵주를 쥔다. 손끝에서 굴러가는 묵주알이 마음을 안정시킨다. 입술에서는 자연스럽게 기도문이 흘러나오고, 오 단·십 단·이십 단이라는 숫자가 작은 성취감을 준다. 그래서인지 묵주는 늘 손목에 착용하는 몸의 일부가 되었다. 하루라도 빼먹으면 허전하고, 빚을 진 듯 마음이 불편하다. 이제는 습관일까, 중독일까. 나는 정말 기도를 하는 걸까, 아니면 내 기분을 달래는 의식을 반복하는 걸까.

어떤 이는 묵주 기도를 하루에 백 단, 심지어 그 이상 바친다고 자랑한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인 한 지인은 기도 ‘실적’이 신심의 깊이를 증명하는 듯 느껴진다고 했다. 음악을 틀면 기도가 더 잘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도 했다. 기도 중 평화와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문득 드는 생각, 혹시 우리의 기도가 ‘감정의 위로’나 ‘실적 쌓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기도는 하고 나면 ‘편안했다’ ‘마음이 뜨거웠다’ ‘눈물이 났다’와 같이 하느님의 위로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다. 그런데 그 느낌이나 기분이 잠시의 파동에 멈출 때가 있다. 마치 잠시 마음의 온탕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말이다. 기도할 때는 분명 고요했고 경건했지만, 왜 삶의 태도까지 바꾸지 못하는 걸까. 기도가 자기 위로의 공간으로 축소되고 기도의 주체가 하느님이 아닌 ‘나의 기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묻게 된다.

우리는 ‘느낌’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의미’를 곱씹기도 전에 이미 ‘느낌’으로 판단한다. 디지털 언어는 종종 ‘무엇을 말했는지’보다는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짧은 영상·이모티콘·SNS 반응 속에서 사람들은 논리보다 분위기를, 사실보다 공감을, 진실보다 감정을 더 빠르게 선택한다. 뉴스 속 참혹한 장면을 보면서도 밥을 먹고 웃을 수 있는 이유다. 감정은 넘치지만, 감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감정(感情)은 외부 자극에 흔들리는 마음의 파동이고, 감동(感動)은 그 느낌이 나를 움직여 변화를 일으키는 울림이다. 감정은 반응이지만 감동은 응답이다. 감정은 스쳐 가지만, 감동은 내 삶의 방향을 바꿀 만큼 오래 남는다.

기도가 진정한 힘을 갖는 순간은 감정이 아니라, 감동이 시작될 때다. 감동은 내 어둠을 비추어 부끄럽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미움과 용서, 이해와 원망으로 나를 밀어붙이기도 한다. 그 갈등과 불편한 영적 투쟁 속에서 비로소 영혼이 살아 움직인다. 마음의 변화를 넘어 삶의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묵주 기도의 신비들은 ‘삶의 장면’이다. 기쁨과 빛, 고통과 영광의 신비 속에는 성모님이 온몸으로 체험하신 예수님의 삶이 살아 움직인다. 영상 속 드라마틱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함께 기뻐하고 고통받으며 현존하시는 삶이다. 그렇기에 묵주알 하나가 손끝에서 굴러갈 때, 성모님과 나의 삶이 그 안에서 함께 움직인다.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듯, 나의 어머니도 늘 묵주를 손에 쥐고 자식들을 위해 기도했다. 길을 걸을 때도, 일할 때도 묵주를 놓지 않았다. 마치 자식의 고통을 온몸으로 끌어안으셨던 성모님의 마음속으로 스며들듯, ‘사랑’이 무엇인지를 삶 자체로 보여줬다.

기도는 나를 위로하는 ‘느낌’에서 시작되지만, 나를 변화시키는 ‘감동’으로 완성된다. 묵주를 쥔 손이 타인에게 열린 손이 될 때, 비로소 기도는 삶이 된다.


<영성이 묻는 안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성당에서 기도하고 나온 뒤,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 후에는 기도의 물이 엎질러지지 않도록, 기도했던 그 마음 그대로 그에게 다가가십시오.”

10월은 묵주 기도 성월이자 전교의 달입니다. 묵주 기도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드릴 수 있는 아름다운 일상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 감응 없이 묵주알만 돌리거나, 묵주를 장식처럼 지닐 때도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과 안정을 위한 부적처럼 대할 때도 있지요.

묵주 기도가 ‘느낌의 위로’를 넘어 ‘삶의 변화’를 부르는 기도가 되기를. 묵주 한 알 한 알이 감정의 파동을 넘어 존재 깊은 곳을 흔드는 체험이 되기를. 그리고 오늘 내 눈빛과 말, 태도와 행동이 성모님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사랑의 현존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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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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