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양’의 원작 소설로 유명한 이창준 작가의 「벌레이야기」는 그리스도인의 용서와 화해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출처=영화 ‘밀양’ 스틸컷
제9장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전개 3. 용서와 화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그러면 누가 먼저 용서와 화해를 시작해야 하나요? 답은 간단합니다. 상처를 준 쪽에서 먼저 용서와 화해를 청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고 돌아와서 예물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상처를 입었더라도 먼저 화해를 시도하도록 격려하기도 하셨습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마태 18,15)
그러나 만일 그가 우리의 용서와 화해를 거부한다면 그를 그냥 보내면 됩니다. 우리는 할 바를 다하였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 기적에 앞서 “건강해지고 싶으냐?”(요한 5,6) 하고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그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려면 먼저 치유를 얻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기꺼이 용서하고 용서받을 마음의 준비입니다. 용서는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하여, 그 다음에는 상대방을 위하여 요구됩니다. 용서에 대해 이 같은 기본 믿음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자유로이 남을 용서할 줄 알고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길을 기꺼이 따르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함께 나누어 봅시다
내가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한 경험이 있다면 세 단계 중 어느 단계까지인가요? 용서는 상대방보다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이고 자신의 결심으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합니까?
영화 ‘밀양’의 원작 소설로 유명한 이창준 작가의 「벌레이야기」는 어린 아들이 유괴되어 살해된 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엄마는 고통스러운 마음을 신앙으로 이겨내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 붙잡힌 범인을 용서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미 사형선고까지 받은 범인이 먼저 신앙적 구원과 사랑 속에 마음이 평화로워져 있음에 다시 한 번 절망하고 말지요.
듣기만 해도 괴로워지는 이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용서와 화해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됩니다. 가톨릭 신자인 우리는 구원을 통한 내면의 평화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세상사는 결코 그렇지 못하고,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하느님을 원망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을 겪기도 합니다.
올바른 용서와 화해의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상대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지 않고,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여기는 등 이야기 속 잘못된 방식은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이뤄낼 수 없습니다. 오히려 타인을 또 한 번 눈물 흘리게 하는 상처로 이어지고 맙니다.
다른 잘못된 방식은 분노에 못 이겨 용서와 화해로부터 아예 다른 방향을 걷는 것입니다. 최근 발생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적 갈등을 통해 서로에 대한 끊임없는 보복으로 점점 평화와 멀어지는 현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묵은 갈등 속에 희생되는 것은 죄 없는 민간인들이지요. 그들이 흘리는 피눈물을 기사로 지켜보며, 용서와 화해에 대해 되짚어 봅니다.
나에게 상처 입힌 사람을 떠올려보면 분명 용서와 화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겪은 아픔만큼 상대도 똑같이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사람이라면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끝없는 보복과 갈등의 반복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픔을 딛고 용서와 화해를 추구하는 이는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