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노예의 합창’은 베르디(Giuseppe Verdi)의 초기 오페라 <나부코(Nabucco)>에 나오는 유명한 합창곡이다. 나부코는 구약성경의 바빌로니아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를 가리키며, 이 합창은 유다인들이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노역을 하며 잃어버린 조국 예루살렘을 그리워해 부르는 노래다. 사슬에 묶여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인들이 노역 중 부르는 이 장면은 오페라의 압권으로 꼽힌다.
노예란 자유 없이 주인의 지배 아래 놓인 비천한 신분의 사람을 뜻하며, 본래 경멸적 의미가 담긴 단어다. 다만 유다 사회에서 유다인 노예의 법적 지위는 외국 노예와 크게 달랐다. 특히 유다인 노예는 대개 6년이 지나면 아무런 보상 없이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탈출 21,2 참조) ‘히브리인 노예를 산 사람은 상전을 산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노예는 인권을 기대하기 어려운 힘없는 존재였고, 주인에게 노예는 재산이자 생사여탈권의 대상이었다.
‘유익하다’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오네시모스는 콜로새 필레몬의 집에서 일하던 노예였다. 당시 노예들은 대개 전쟁 포로나 노예상에게 팔려 온 사람들이었고, 노예제도는 고대사회의 산업 활동을 떠받치는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오네시모스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로, 자라면서 자신의 처지와 환경을 견디기 어려웠고 노예 신분을 벗어나길 갈망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주인 필레몬은 부유한 사람이었고, 사도 바오로를 통해 가족과 함께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며, 집을 신자들의 모임 장소로 내어줄 만큼 신앙에 열정적이었다. 바오로와도 친구처럼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오네시모스는 마침내 주인에게서 도망쳤다. 그 시대에는 도망 노예가 주인의 물건을 훔치거나 가족을 해치면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오네시모스는 주인의 재산을 훔친 뒤, 당시 세상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로마로 향했다. 그는 로마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 알맞은 곳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로마에 있던 오네시모스는 감옥에 수감 중이던 바오로를 운명처럼 만나 그의 말에 깊이 감화되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바오로는 오네시모스의 인성과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함께 주님의 복음을 전하자고 권했다. 오네시모스는 이에 훌륭히 협력하며 바오로를 도왔다.
오네시모스의 사정을 들은 바오로는 편지를 써 주며 필레몬에게 돌아가라고 권했다. 필레몬은 편지를 손에 들고 돌아온 오네시모스를 노예가 아니라 형제로 맞이했다. 신앙을 통해 오네시모스의 삶은 완전히 새로워졌다. 과거에는 어둡고 쓸모없어 도망치고만 싶던 삶이었지만, 이제는 참으로 ‘쓸모 있고 유익한’ 인생이 된 것이다. 이 세상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가 넘치는 세상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