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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사도 바오로를 후원하고 동행했던 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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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의 왕이란 불리는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1797~1828)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 관현악곡, 교회음악, 실내악곡, 피아노곡 등 명작을 남겼다. 31세로 아깝게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가 가난과 타고난 병약함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은 슈파운이라는 친구 덕분이었다.


교직에 있던 아버지는 슈베르트도 교사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에게는 좋은 시를 발견하기만 하면 즉석에서 작곡할 수 있는 천재적 재능이 있었다. 아버지의 눈에 슈베르트의 학창 생활은 빗나가 보였다. 화가 난 아버지는 슈베르트의 용돈마저 끊어버려 15세의 슈베르트는 외롭고 힘들었다. 악상이 떠오를 때 정리할 오선지를 구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이때 다행히도 슈베르트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친구 슈파운이 있었다. 슈파운은 자신도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슈베르트에게 오선지를 사 주곤 하였다.


슈베르트는 교직 과정을 이수하여 교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평탄하지 못했다. 그는 17세에 <C장조의 교향곡>을 완성할 정도로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친구 슈파운은 학교에 얽매여 전전긍긍하는 슈베르트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슈파운은 돈 많은 친구 쇼벨의 하숙집으로 슈베르트를 데려가 작곡에만 전념하도록 했다. 그리고 후원회를 만들어 슈베르트를 적극 후원하는 데 앞장섰다. 슈베르트를 사랑하는 선량한 시민들의 모임도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슈베르트의 음악이 눈부시게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슈베르트는 생전에 그럴듯한 연주회 한 번 못 한 불우한 음악가였지만, 인간적으로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친구를 가진 행운아였다.


사도 바오로는 여러 명의 좋은 협력자 덕분에 성공적으로 선교를 할 수 있었다. 성공한 이들을 보면 항상 좋은 은인, 친구가 있다. 바오로에게는 그리스 출신으로 바오로를 만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티토라는 인물이 있다. 티토는 바오로가 바르나바와 함께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바오로의 어려운 전교 활동에도 항상 그가 동행했다. 티토는 믿음직스럽고 충실한 사람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신심 깊은 신자였다. 바오로가 “이 형제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로 모든 교회에서 칭송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의 영광과 우리의 열의를 드러내려고 우리가 맡아 수행하는 이 은혜로운 일을 위하여, 여러 교회가 우리의 여행 동반자로 뽑아 세운 사람이기도 합니다”(2코린 8,18-19)라며 티토를 칭송했다.


문제가 생긴 교회에 파견되어 사태를 수습한 것을 보면 티토는 지혜와 정치적 수완도 있었던 인물이었다. 티토의 가장 중요한 활약은 코린토 교회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었다. 고린토 교회의 분열은 바오로의 큰 관심사였다. 교회가 분열되어 붕괴로 이어질 위험한 상태였는데, 티토는 코린토 교회를 다시 하나로 만들어 사태를 수습했다. 바오로가 이방인의 사도로 불리는 것도 티토같은 성실하고 도움을 주는 협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고 함께해주는 진정한 친구는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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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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