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살이 전체가 언제나 시작이 있으면 마침이 있고, 마침이 있으면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 전례력 역시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주간을 지내며 다해를 마무리하고, 대림 제1주일부터 가해를 시작합니다.
이 시절이 되면 지난 한 해 삶의 여정을 돌아보며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 살피게 됩니다. 한 해 동안 각자 참으로 많은 사건을 겪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고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주는 때도 있을 것이고, 어떤 때는 부족함과 부끄러움으로 후회와 아쉬움을 가득 남기는 사건들과 만남도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깨달음을 얻고 신심을 깊이 할 수 있어 미소를 머금고 기쁨을 누린 몇몇 일들이 떠오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듯이 나는 어디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뵐 수 있을지 고민하던 때, 문득 성경 말씀을 듣고 성체와 성혈을 모시는 미사 자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뵈옵는 곳이라는 강한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미사 지향뿐 아니라, 성모 동산에 촛불을 밝히며 전구를 청하시는 교우들의 그 간절함이 깊이 전해오는 순간을 맞이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목 여정에 있어서 함께하는 수많은 선한 동반자와 협력자가 있어 행복한 삶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려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좌우에 매달린 두 죄수의 모습은 자신을 돌아보며 하느님께로 올바로 나아가는 방향을 일깨워줍니다. 예수님을 모독하는 죄수에게 다른 죄수는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루카 23,40)라고 말하며 하느님을 떠올리는 ‘회개’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어서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루카 23,41)고 말하며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는 동시에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라고 겸손하게 청원을 드립니다. 이러한 ‘회개-자기 성찰-신앙 고백-겸손한 청원’을 보이는 그 죄수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라고 약속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우리도 낙원을 약속받은 그 죄수처럼 지난 한 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먼저 감사할 세 사람을, 그리고 감사할 세 가지 일들을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또 그 일들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해 보았으면 합니다. 직접 전하기가 어려우면 마음으로 기억하며 기도 안에서 기억하도록 합시다.
상처받은 일,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서도 떠올려 봅시다. 그 일에, 그 사람에 매몰되어 더 깊은 상처의 늪에 빠져 헤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주님 사랑의 도움으로 거기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도 용서하는 사랑을 실천해 보자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사랑의 용서라는 커다란 용기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저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사랑이신 주님께 부족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라고 말씀드리면 됩니다. ‘교회의 머리이고,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만물을 화해시켜 주신 분’(콜로 1,18-19 참조)이신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께서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새로운 가해를 맞이하여 희망차게 살아가겠지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서로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살이이기에, 때론 어려움과 슬픔, 혼란과 상처를 입힐 수도 있고, 입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만나는 사람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운 하느님의 사랑을 떠올리며 한 걸음씩 나아가며 아름다운 가해를 가꾸어 가도록 합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지만 주님께서는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하느님께 오롯한 믿음과 희망을 두고, 하느님처럼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매일매일의, 한 달 한 달의 조각조각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그림과 같이 느껴집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가해라는 새로운 한 해를 아름답게 채워갈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글 _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