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 바람이 차갑게 스며들고 길가에 낙엽이 수북이 쌓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글을 쓰고 싶어진다. “마른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잎새 하나?”라는 노랫말이 떠오르고, 이런 날은 ‘시인의 눈빛 되어 시인의 가슴이 되어’ 시를 쓰고 싶어지기도 한다.
요즘 인공지능이 쓴 글이 신문에 실리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심지어 책으로 출간된다.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글을 더 잘 쓴다’는 말도 놀랍지 않다. 문법은 매끄럽고 논리는 치밀하다. 그러나 그 글에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결핍이 있다. 지능(intelligence)은 보이지만, 정신(spirit)은 보이지 않는다. 지능과 정신, 바로 그사이의 간극이 오늘 우리가 마주한 본질적 질문이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유려한 문장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글 속에서 “그대가 나무라 해도 내가 내가 잎새라 해도?”라는 ‘옛 시인의 노래’에 담긴 애틋함을 느낄 수 있을까? 이별의 허무를 나무와 잎새로 비유한 이 가사는 단순한 언어의 조합이 아니다. 인간의 체험·감정·기억이 응축된 정신의 흔적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많은 연애 시를 학습해도 이런 서정의 온도는 만들어낼 수 없다.
정신은 인간의 체험과 감정, 상처와 치유의 흔적에서 피어난다. 지능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면, 정신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학습해도 인간의 서사가 깃든 한 줄의 글을 읽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 지능이 정보를 조립한다면, 정신은 그 정보를 ‘삶의 의미’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에게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시험 준비, 업무 효율, 빠른 정보 소비, 읽기는 점점 더 기능화된다. 빠르게 스크롤 하며 훑어보고, 핵심만 캐치한 뒤 다음 콘텐츠로 넘어가는 읽기. 이것은 마치 인공지능의 데이터 처리방식과 닮아있다. 그렇게 소비된 글은 하나의 데이터로 축소되어 마음에 흔적을 남기지 못한 채 흘러가버린다.
인공지능은 기억을 데이터로 저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체험을 통해 각인된다. 비슷한 상황에서 떠오르는 오래된 냄새, 한 줄의 문장을 읽다 문득 솟구치는 눈물, 밑줄 긋던 순간의 떨림. 이것이 정신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정신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감응의 회로’로 작동한다. 기억은 그 회로를 깨우고, 우리가 잊고 지냈던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낸다.
AI 시대의 위기는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이 정신을 잃어가는 방식에 있다.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보다 정보를 소비하는 속도가 우선되고,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갈 시간은 점점 사라진다. 정보는 넘치지만 마음은 공허하고, 속도는 빠르지만 생각은 얕아진다. 바로 이때 정신이 깃든 글은 우리를 다시 ‘느끼고 생각하는 인간’으로 돌아오게 한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곧 정신을 훈련하고 확장하는 일이다. 즉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이다.
그래서 종이책이다. 종이책은 단순히 글이 담긴 그릇이 아니다. 느림을 허락하고, 몰입을 회복시키는 하나의 공간이다. 책장을 넘기는 리듬, 활자의 질감, 문장의 결을 따라가며 사고의 속도를 늦추면, 그 느림 속에서 정신은 다시 깊어진다. 손끝에서 활자를 느끼고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집중이 깨어나고, 뇌는 새로운 사고의 길을 낸다. 이것은 ‘지식의 저장’이 아니라 ‘정신의 지도’를 그려가는 과정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책을 읽다가 영혼이 깨어나는 체험을 했다. 그에게 독서는 지식을 쌓는 행위가 아니라, ‘영혼의 눈을 뜨는 사건’이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우리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생각하고, 감동하고, 회상하고, 깨닫는다. 그것이 바로 ‘정신의 일’이다.
이 가을의 끝에서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시 한 편, 책 한 권을 통해 잊고 지냈던 우리의 정신, 인간다움의 온도를 다시 만나고 싶다.
<영성이 묻는 안부>
살다 보면 마음이 지치고, 생각이 흐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를 조용히 붙잡아주고, 다시 걷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손쉽고 친근한 도우미는 바로 한 권의 책인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서관을 ‘영혼을 위한 약의 저장소’라 불렀습니다. 책 한 권은 마음을 치유하고, 생각을 넓히며, 영적으로 성장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지요. 실제로 책을 읽을 때 우리 뇌에는 새로운 신경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익숙한 길을 벗어나 한 발 내딛게 되며, 마음의 감각이 새롭게 깨어납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부상으로 누워있는 동안 심심함을 달래려고 소설 대신 집에 있던 신앙 서적을 읽게 되었고, 그 ‘대신 읽은 책’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도 청년 시절 「영적 투쟁」을 읽고 깊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 독서는 그가 걸어갈 영적 방향을 열어주었습니다. 이렇게 책은 때때로 삶의 결정적인 순간이 되어 우리 안의 닫힌 문을 열어주는 힘을 지닙니다. 이 좋은 계절, 스마트폰 대신 영혼을 데워주는 책 한 권, 손에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잊고 지냈던 우리의 정신과 인간다움의 온도를 다시 깨워줄지도 모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