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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 외에 상처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45. 마음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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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상처받기 쉬운 존재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연약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는 영혼에 항상 그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가능한 한 상처를 받지 않도록 평상시 영혼의 근력을 키우는 철학적 훈련이 필요하다. 철학상담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개인의 문제 해결에 있지만, 평상시 영혼의 근력을 키움으로써 쉽게 상처받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러면 상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고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os, 55~135)는 “자기 자신 외에 상처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annes Chrisostomus, 349~407)는 “자기 자신을 상처 내는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자는 타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인간은 정신적으로 외부로부터 영향받음의 상태에 놓여 있다. 감각·지각에서 출발하는 인간의 인식 자체가 일종의 영향받음이자 감염이다. 좋지 않은 경험, 고통스러운 경험은 우리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며 우리를 감염시킨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반드시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설사 우리가 받은 상처가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가해진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내게 상처가 될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외부로부터 오는 고통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의 태도에 달려 있다. 그렇기에 스토아 철학자들은 ‘마음의 평정심’(아파테이아)을 얻기 위해 평소 철학적 훈련을 하였다.

상처는 그에 상응한 외부의 대상도, 그 깊이의 절대적 기준도 없다. 상처는 상처를 받는 이의 마음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기 삶과 고통 그리고 자기 상처를 창조적이고 성숙한 방식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륀(Anselm Grün, 1945~) 신부는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고통과 상처의 씨앗은 외부의 것에 의존하거나 흔들림으로써 ‘내적 자유’를 잃고 결국 스스로 자기를 가해하는 행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사실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만들어내는 우리의 ‘표상’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죽음이 고통스러운 것은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표상 때문이다.

즉 고통에 대한 잘못된 표상이 바로 우리를 괴롭히고 상처를 준다. 그러므로 우선 올바른 표상을 갖는 것이 우리를 내적으로 자유롭게 하는 길이다. 물론 이는 철학적 훈련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실과 실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 없이 결코 한계를 넘어 ‘보다 더 큰 실재’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

상처의 치유를 위한 올바른 표상 갖기는 매사 진정성 있는 신중함에서 시작된다. 건전한 상식과 어디에도 치우침 없는 불편심, 그리고 사물에 대한 무질서한 애착을 끊음으로써 외부의 통제와 지배에서 벗어나 세계에 대한 올바른 표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올바른 표상을 갖기 위해 또한 우리에게 존재의 신비 앞에서 세계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경건함이 필요하다. 경건함 없이 결코 삶의 전체 의미를 직관하는 통찰력을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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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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