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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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가능성 있기에 돌봄 필요한 식물 상태 환자

청년들을 위한 생명 지킴 안내서(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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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르세유 성 엘리사벳 병원의 병실 모습. OSV


제10장 삶의 끝에서 - 죽음과 고통의 문제

전개 4. 식물 상태와 뇌사


안락사는 단지 ‘죽을 권리’의 주장뿐만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으로 발생하기도 합니다. 특히 식물 상태로 수년간 누워 지낼 수밖에 없는 이들을 편안하게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종종 식물인간 또는 식물 상태라고 이야기하는 상황을 이른바 ‘뇌사’와 혼동하기도 합니다. 곧 식물 상태인 환자는 대뇌 기능이 멈췄기 때문에 ‘부분 뇌사’라고 표현하는데, 이를 마치 뇌의 모든 기능이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된 ‘전 뇌사’와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뇌사’는 바로 ‘전 뇌사’의 개념을 이야기하며 환자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곧 신경학적 기준에 따라 환자의 죽음을 판정한 것을 ‘뇌사’라고 합니다. 오늘날 인공호흡기와 같은 연명 의료들은 환자가 죽음에 이른 이후에도 일정 기간 환자의 심장과 호흡을 유지시킬 수 있기에 환자가 실제로 죽었다는 판정을 내리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뇌사라는 새로운 죽음의 기준이 도입됐습니다.

그러나 식물상태는 대뇌에 심한 손상을 입은 환자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과 주변 환경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기도 하며 뇌의 시상 하부와 뇌간의 자율 기능이 부분적으로 또는 온전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상태는 심각한 급성 또는 만성 뇌 손상에서 회복되는 단계를 가리키는 일시적인 상태이거나 그러한 손상에서 회복에 실패한 지속적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보통 이러한 상태가 6개월 이상 이어질 경우 지속적 식물 상태(Persistent Vegetative State, PVS)라고 부릅니다. 1994년, 미국의 지속적 식물 상태에 관한 특별위원회(The Multi-Society Task Force on PVS)는 식물 상태를 진단하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자신과 주변 환경을 알아채는 증거가 없고 다른 사람과 상호 작용이 불가능함 △시각·청각·촉각 또는 통각에 대한 지속적·반복적·목적적이거나 의지적 행동 반응의 증거가 없음 △언어 이해나 표현의 증거가 없음 △수면-각성 주기와 같은 간헐적 각성이 있음 △의료 또는 병간호로 생존할 수 있는 시상 하부와 뇌간의 자율 기능은 충분히 유지됨 △대소변을 가리지 못함 △뇌 신경 반사와 무조건 반사는 다양한 정도로 남아 있음.

식물 상태인 환자가 의식을 회복할 확률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 과학으로도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환자들이 비록 주변 환경을 알아채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분명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물 상태의 환자는 수개월 안에 사망에 이르게 되는 말기 환자도 아닙니다. 그래서 식물 상태의 환자에게는 다른 환자에게 제공하는 일반적인 돌봄(통증 조절, 영양/수분 공급, 위생 상태의 관리 등)을 반드시 제공해야 하며 특별한 이유 없이 이를 중단해서 환자가 사망한다면 그것은 안락사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5


덧붙이는 묵상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효용 가치를 중요시합니다. 물건뿐만이 아니라 인간을 쓸모와 기능적 측면으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겉보기에 아무런 반응이 없어 보이는 식물 상태의 환자는 상호 작용이 불가능하고 회복할 가능성도 극히 적기에 우리는 때로 이들을 ‘죽은 상태’로 봅니다. 세상은 그들의 고통을 덜어야 한다며 ‘죽을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곤 합니다.

이들은 영양 공급관과 소변줄 등의 도움을 받을지라도 심장이 뛰고, 스스로 호흡하며 뇌간의 생체 기능도 남아 있습니다. 모두가 빈 껍데기라 여겼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고스트 보이」 저자 마틴 피스토리우스는 긴 시간 침묵 속에서 듣고 느끼며 생각하는 온전한 인격체였습니다. 긴 침묵 속에 12년 만에 깨어난 피스토리우스의 예처럼 우리는 종종 ‘생명력’의 기적에 전율을 느끼기도 합니다.

식물 상태의 환자는 뇌사 상태의 환자나 죽어가는 말기 환자가 아닙니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살아 있는’ 이웃입니다. 효용성과 기능 측면으로만 인간을 마주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할 수 있어 존귀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모습을 닮아 창조됐기에 그 자체로 존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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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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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사탕2025. 11. 26

로마 4장 19절
백 살가량이 되어,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사라의 모태도 죽은 것이라 여기면서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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