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신부님에게 들었던 이야기이다. 오래전 부인을 보내고 혼자된 한 부자 노인이 자녀들의 끈질긴 청을 이기지 못했다. 일생의 피와 땀이 얼룩진 그의 재산을 미리 나누어 달라는 요구였다. 자식들에게 당장 큰 도움이 된다고 하니 그는 고민 끝에 유산을 미리 상속해 주었다. 처음에는 아버지께 모든 형제가 지극정성이었다.
그런데 몇 년 후 아버지는 암에 걸려 병원에서 여러 번 수술을 받게 되었고 오랜 시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부자 아버지는 병원 입원비도 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자식들은 점차 발걸음을 끊더니 병든 아버지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자식들의 배신에 관해 들은 담당 의사도 화가 나서 아버지에게 조언했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연락하여 사실은 아직도 친구의 명의로 토지가 아주 많이 남아있으니 처분할 수 있도록 돈을 보내라고 했다. 연락을 받은 자식들은 바로 아버지 계좌로 많은 돈을 보냈다. 그래야 더 많은 토지를 받을 수 있다고 자식들은 생각했다. 돈을 받은 아버지는 돌아가실 게 뻔한데 뭐 하러 생돈을 쓰냐는 똑똑한(?) 자식들과 연을 끊었다.
돈과 재물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때론 가족, 부부관계 등 애틋한 인간관계도 파괴해 버리니 말이다. 물론 돈과 재물, 그 자체는 좋은 것이며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러나 재물 역시 세상의 모든 만물처럼 덧없이 지나가는 것이며 영원하지 않다. 재물 욕심이 너무 과할 때 자제력을 잃고 몸과 마음은 파멸에 이른다. 하느님이 계셔야 할 최고의 자리를 돈과 재물이 차지한다면 재물의 노예와 다름없다.
어느 날 한 금수저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주님, 제가 어떤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그 청년은 하느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켰던 열심한 인물이었다. 그는 실제 능력도 출중하고 인생에서 못 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어쩌면 영원한 생명조차 자신이 가진 엄청난 돈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청년은 예수님께 “간음, 살인, 도둑질, 거짓 증언을 하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 등은 어릴 때부터 잘 지켜 왔다”며 의기양양했다. 그 청년에게 예수님은 그가 생각하지 못한 말씀을 하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꼭 하나 있다.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런 다음에 나를 따라라.” 부자 청년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던 재산을 모두 포기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 청년은 몹시 슬펐다. 부자 청년은 세상에서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고 슬퍼졌다.
처음 느끼는 좌절감이었을 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말씀은 돈과 재물 자체를 최고인 양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재물이나 돈이 인생의 최종 목적, 영원한 생명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인생에서 올바른 최고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