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은 사해 동북쪽에 있는 마케루스 성채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갈릴래아의 영주 안티파스가 이복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일을 비판한 결과입니다. 따지고 보면 안티파스가 헤로디아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두매아 출신으로서 유다의 통치자가 된 헤로데 가문은 늘 정통성 시비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안티파스는 나바테아 왕국의 공주였던 아내와 이혼하고 유다 독립전쟁의 영웅 마카베오 가문이 세운 하스모니아 왕가 출신의 헤로디아와 재혼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기 아내를 버린 안티파스를 세례자 요한이 비판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유다 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안티파스가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던 세례자 요한을 매우 경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안티파스는 요한이 세력을 규합해 정통성이 없을 뿐 아니라 부도덕하기까지 한 자신을 축출할지 두려워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감옥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전해 들은 요한은 두 제자를 보내 그분의 정체를 묻게 합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여기서 ‘오실 분’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구약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좀 이상합니다. 일찍이 광야에서 메시아의 오심을 선포한 이래 오직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데 온 삶을 바쳤으며, 직접 자기 손으로 예수께 세례까지 베푼 요한이 새삼스럽게 예수님의 정체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것이 말입니다.
지금 요한은 상당히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 말씀의 힘이나 놀라운 능력을 보면 메시아가 맞는 것도 같지만, 그분이 이어가는 행보는 요한이 기대한 메시아의 모습과는 사뭇 거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요한은 심판자로서의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마태 3,12)
하지만 예수님에게서 더 크게 보이는 모습은 정의로운 심판자보다 자비로운 치유자가 아닙니까? 게다가 현실은 또 어떠합니까? 오히려 메시아의 정의를 외치던 자신이 안티파스의 불의를 비판하다가 감옥에 갇혀 생사를 장담할 수 없게 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했다면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요한의 질문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이 말씀은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메시아가 도래하면 일어날 일들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실제로 이러한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요한에게 당신이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요한이 가지고 있던 메시아 상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 예언서에는 위에서 언급한 메시아의 모습뿐 아니라 심판하는 메시아의 모습도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심판의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예수의 오심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음을 몰랐기에 오해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궁극적인 심판은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오심으로 이미 하늘나라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많은 이는 세례자 요한처럼 메시아께서 오셨음을 믿기 어려워합니다. 성경은 메시아의 시대에 정의가 강물처럼, 평화가 바닷물처럼 흐르리라고 예언하고 있는데, 우리가 체험하는 이 세상은 종종 더 아름답고,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워져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빠져 가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재림은 왜 늦어지고 있을까요? 부당하게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바로 지금 여기에 오셔서 시시비비를 준엄하게 가려 주시기를 학수고대할 텐데요.
아직 마지막 때가 오지 않은 것은 하느님이 사람의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바라시기 때문일 겁니다. 설사 그가 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자비의 때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야겠습니다.
그렇지만 때가 되면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며, 그때 모든 것은 바로잡힐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제2독서인 야고보서가 권고하듯이, 가을비와 봄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주님의 재림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해야겠습니다.

글 _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동교구 농은수련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