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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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본질은 지시가 아닌 ‘의미의 드러남’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48.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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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안에서 오로지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는 현상학적으로 인간의 고유한 본질적 특성을 밝혀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인간의 본질을 규정한 오래된 그리스 말 중에 ‘초온 로곤 에콘(ζ?ον λ?γον ?χον)’이 있다. 이 말은 보통 ‘이성을 가진 동물’로 번역되는데, 사실 여기서 이성에 해당하는 ‘로고스(λ?γος)’는 ‘말’을 뜻하며, 말은 언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의 생각은 언어 없이는 불가능한데, 이 언어를 통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발화 사건이 말이라면, 이런 생각과 말을 기호로 기록한 형태가 문자다. 언어는 존재와 삶의 풍부한 의미의 담지자로서 우리는 이 언어를 통해 자기와 세계를 이해할 뿐 아니라 타인과 대화하고 소통한다.

하이데거(1889~1976)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진술은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첫째, 언어가 존재 현상을 이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는 것이며, 둘째, 언어는 진리가 드러나는 장이라는 것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진리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알레테이아’는 ‘비은폐성’(발견되어 있음)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진리는 단순한 명제의 참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가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을 의미한다. 존재는 보통 은폐된 채로 있으며, 그 은폐성에서 끄집어내 오는 것이 진리인데, 이때 언어는 진리를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된다. 언어로 말함으로써 존재 의미가 비로소 분명히 밝혀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은 항상 어떤 대상을 지향하며, 이때 언어는 이 지향성을 매개하는 중요한 도구로서 작용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의식 대상을 외부 세계와 연결하며, 새로운 의미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후설(1859~1938)에 의하면 언어는 ‘지시’와 ‘표현’의 두 가지 기능을 갖는다.

언어의 지시 기능이 경험적 사물을 향해 있다면, 언어의 표현 기능은 ‘의미’를 향해 있다. 후설에 의하면 의미는 사물처럼 지시될 수 없으며 오로지 표현될 뿐인데, 언어의 본질적 기능은 대상의 지시가 아닌 바로 의미의 표현에 있다. 이렇게 의식의 지향성이 근본적으로 물리적 대상을 넘어 의미 구조를 형성하는 만큼, 언어로 표현된 의미 세계는 그 다양한 맥락과 의도와 해석에 따라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때 언어가 담고 있는 ‘이념성’은 소통과 긴장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이자 인식 그 자체다. 자연과 다르게 인간의 세계는 언제나 언어로 매개된 세계이며, 그 세계는 또한 새롭게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할 ‘매개된 직접성’으로 우리 곁에 있다. 우리는 이 언어로 매개된 세계 속에서 자기를 이해할 뿐 아니라 자기를 실현한다. 그런 만큼 우리가 평소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한 발화 사건이 아니라 존재 진리에 참여함이자 자기 존재를 실현하는 것과 직결된다.

가다머(1900~2002)에 따르면 우리의 언어는 공동체 안에서 형성된 것이며, 역사를 통해 전통적으로 전승된 언어다. 인간의 이해가 언어로 전승된 과거의 전통에 근거하고 있는 만큼 현재의 이해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 시간적 간격을 메우는 새로운 해석의 작업이다. 시간적 간격에서 비롯된 이해의 갈등과 그로 인한 상처 역시 이런 해석의 작업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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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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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사탕2025. 12. 10

시편 31장 8절
당신의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니 당신께서 저의 가련함을 굽어보시어 제 영혼의 곤경을 살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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