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삶의 끝에서 ? 죽음과 고통의 문제
전개 6-2. 고통의 의미, 정신적 고통
육체적 고통에 이어 정신적 고통은 영혼의 문제와 관련됩니다. 정신적 고통의 상황들은 다양합니다. 죽음의 위험 속에서, 가족들 특히 자식들의 죽음 앞에서, 공동체 안에서 미움과 박해를 받을 때, 조롱과 멸시 속에서, 고독과 소외감 속에서 그리고 악을 행한 뒤 겪는 양심의 가책에서 우리는 정신적 고통을 경험합니다. 정신적 고통은 육체적 고통과 함께 나타납니다. 심한 스트레스가 우리의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신적 고통은 영혼과 육체가 하나인 인간의 전인적 고통을 말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적 고통을 인간적 고통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인간이기에 고통스럽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고통이 지니고 있는 인간적 측면은 우리를 타인과의 친교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 앞에서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리고 그 고통이 그가 인간이기 때문이라면 우리는 그 사람의 고통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보게 됩니다. 고통을 통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친교와 연대가 생겨납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돌보며 우리 자신을 돌보게 되고, 고통의 의미에 대한 물음 안에서 함께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통과 죽음은 인간의 삶에 허무의 그림자를 드리우기에 우리는 누구나 고통과 죽음 앞에서 ‘왜?’라는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고통의 물음은 인간의 근본적인 물음이며 해결되지 않지만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고통은 한 사람의 성숙과도 연관됩니다. 속담에서도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고 말합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성장기에 성장통을 겪듯이 한 인간이 성숙하는 과정에는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 시절은 육체적 성장은 끝나더라도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육체적 성장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정신적 성장은 의지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이고 대면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어떤 기술을 익힐 때에도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힘든 것을 피하는 사람은 결코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없습니다.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는 한 번의 완벽한 점프를 위해서 일천 번을 넘어졌고, 강수진 발레리나의 굳은살이 박인 울퉁불퉁한 발은 유명합니다. 부모가 되는 사람들도 자신을 버리고 자녀들을 위하여 헌신합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을 받아들이고 참아 낼 때 우리는 더욱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함께 나누어봅시다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고 삶에서 감사할 일들을 기억하고 적어 보세요.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5
덧붙이는 묵상
정신적 고통은 분명 사람을 외롭게 만듭니다. 다수로부터 무관심을 받거나 멸시의 눈초리를 받을 때, 우리는 위축되고 심한 스트레스에 휩싸입니다. 이 고통 앞에서 “왜 나에게만 시련이 있는 것인가”라고 물으며 도망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은 고통을 마주하고 견뎌낼 때만 비로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나를 성숙하도록 만들도록 하는 영혼이 겪는 성장통입니다.
고통의 신비는 나 혼자만의 성숙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공감(共感)이란 단어를 떠올려봅시다. 공은 ‘함께’ 감은 ‘느낀다’는 뜻입니다. 공감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 돼 느끼는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가 아파보지 않았다면 진실되게 누구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타인의 눈물을 보며 저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을까요.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고통은 남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게 하는 촉매제입니다.
지금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아픔은 외로움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나를 연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고통을 겪은 우리는 남의 아픔을 보며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라며 서로를 보듬으며 연대와 친교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비로소 우리는 아픔을 겪어야만 남을 진실되게 위로할 수 있고, 내가 아파봤기에 남의 아픔을 함께(共) 느낄 수(感) 있습니다. 고통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끈끈하게 이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겪는 고통은 여러분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바윗돌이 아니라 성숙해가는 과정이며 훗날 똑같은 아픔을 겪는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는 따뜻한 손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