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8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영원한 생명 희망하도록 생의 마지막 동반

청년들을 위한 생명 지킴 안내서(50·끝)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영화 ‘리스본 특급’에 출연했던 배우 알랭 들롱의 생전 모습. 위키미디어 커먼즈


제10장 삶의 끝에서 – 죽음과 고통의 문제

결론


현대 사회의 문화적 분위기에서는 사실 죽음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것이며, 피할 수 없다면 안락사와 같은 방법으로 고통의 시간을 줄이는 것이 현명한 것처럼 여기게 됩니다. 이는 더 많은 돌봄과 관심을 받아야 하는 말기 환자의 삶과 생명을 경시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때때로 그렇게 해 주는 것이 그를 위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마지막까지 그가 희망을 잃지 않고 인간으로서 품위 있는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동반하고 지지하고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움을 위해서는 말기 환자 자신뿐만 아니라, 그를 돌보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우리도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다고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드높은 소명은 인간의 존엄성을 더욱더 밝혀 주며, 영원한 삶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이들의 마지막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줍니다. 성경은 그 희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20-22)

죽음을 넘어선 희망은 결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이성을 지닌 우리는 세상의 온갖 불의와 억압을 볼 때,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불의한 현실에 희생된 무죄한 이들의 삶이 그냥 그렇게 끝나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불합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마음 안에는 이미 영원한 삶의 씨앗이 심겨 있습니다.

믿는 이에게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활짝 열린 문이며,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삶은 우리의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는 행복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영원한 삶에는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묵시 21,4)라고 가르쳐 줍니다. 생의 말기를 보내는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이러한 신앙과 희망은 어떤 것보다 큰 위안을 가져다주며,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그들을 위해서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줍니다.

추천 도서
1. 김형숙,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뜨인돌, 2013
2.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신에게 보내는 편지」, 김민정 역, 열림원, 2013
3. 군나 두트게·신동일 공편,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의 존엄성」, 세창출판사, 2016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5


덧붙이는 묵상

지금은 선종했지만 세기의 배우 알랭 들롱은 생전 “노화는 끔찍하다”며 안락사를 원했습니다. 젊은 시절 화려한 인생을 보냈던 그에게 나이 들고 병환에 지쳐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끔찍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마치 고통 속에 몸부림치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되느니, 차라리 짧은 고통 속의 죽음이라는 처방전을 선택하는 듯합니다. 소위 ‘조력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고통의 치료제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고통을 없애기 위해 고통받는 사람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진정한 치료이자 사랑일 수 있을까요? 또 세상에서 쓸모가 없어 보인다고 해도 과연 그가 진정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될까요. 이런 시선은 인간을 효용 가치로만 따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고, 하느님 모습을 닮은 존귀한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에 고통받는 이들에게 진정한 처방전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약물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희망과 신앙을 잃지 않고 인간으로서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건네야 할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는 동반이지, 죽음이라는 절망이 될 순 없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조차 사랑으로 동반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인에게 죽음은 삶의 허무한 붕괴이거나 벽이 아닙니다. 고통 속에 있더라도 우리 손으로 억지로 열어야 할 문도 아닙니다. 죽음을 넘어선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인위적인 끝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생명을 껴안고 사랑할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12-1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12. 18

마태 6장 3절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