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죽은 이들이 부활하여 심판받을 것이며 하느님 나라의 영광으로 충만한 새 하늘 새 땅이 열릴 것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화, 1536~1541년,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마지막 고백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을 하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경은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원한 삶에 대한 선언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교회가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처음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내용입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질타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1코린 15,12-14. 20)
예수님께서는 죽은 모든 이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요한 5,29)
죽은 이들은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요?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죽은 이들이 어떻게 되살아나는가? 그들이 어떤 몸으로 되돌아오는가? 하고 묻는 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대가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체가 아니라 밀이든 다른 종류든 씨앗일 따름입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합니다.”(1코린 15,35-37.42. 52-53)
교회는 모두가 이해하도록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육신을 지니고 부활하셨다.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루카 24,39)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로 돌아오셨다는 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지금 가지고 있는 자신의 육신을 지니고 부활할 것이다. 그러나 이 육신은 ‘영적인 몸’(1코린 15,44)으로,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필리 3,21 참조)(「가톨릭교회 교리서」 999)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려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하고, ‘이 몸을 떠나 주님 곁에 살기’(2코린 5,8) 위하여 떠나야 한다. 죽음이라는 이 ‘떠남’에서 영혼은 육신과 분리된다. 그 영혼은 죽은 이들이 부활하는 날 육체와 다시 합쳐질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05)
그러면 언제 죽은 이들이 부활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요한 6,39-40), “세상 끝 날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죽은 이들의 부활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가톨릭교회는 모든 사람은 죽자마자 그 불멸의 영혼 안에서 산 이와 죽은 이의 심판자이신 그리스도의 ‘개별 심판’으로 영원한 갚음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대가는 연옥에서 정화를 거치거나, 곧바로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거나, 곧바로 지옥에서 영원한 벌을 받는 것입니다. 지옥의 주된 고통은, 하느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새겨야 할 교회 가르침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지옥에 가도록 예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자유 의사로 하느님께 반항하고 죽을 죄를 짓고 끝까지 그것을 고집하는 사람만이 지옥에 가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에 교회는 미사와 일상 기도를 통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2베드 3,9) 바라며 하느님의 자비를 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어 최후의 심판을 하시는 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것이라고 신약 성경은 말합니다. 이날 모든 것이 변화할 것입니다. 모든 이가 부활할 뿐 아니라 교회 역시 천상 영광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이날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통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1코린 15,28) 것입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신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묵시록과 마찬가지로 “아멘”으로 끝맺습니다. 히브리말 ‘아멘’은 견고함, 신뢰, 성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아멘’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성실과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의미합니다.
“신경 끝의 ‘아멘’은 첫머리의 ‘저는 믿나이다’라고 하는 말마디를 되풀이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과 계명에 대하여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무한한 사랑과 완전한 성실성의 ‘아멘’이신 분께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일매일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례 때 ‘저는 믿나이다’라고 한 신앙 고백에 대한 ‘아멘’이 될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64)
부족한 긴 연재 글을 인내로이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신경은 여러분에게 거울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믿는다고 고백한 모든 것을 정말 여러분이 믿고 있는지 그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여러분의 믿음 안에서 기뻐하십시오.”(「설교집」 58,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