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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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 씻김과 발림

주님 세례 축일 마태 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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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 작 '그리스도의 세례'

 


우리는 피부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해 ‘씻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씻는 행위는 ‘바르는 행위’로 이어진다. 여성과 남성의 방법과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바르는 행위를 통하여 깨끗해진 피부층을 보호하고 타인과 세상을 향해 자기를 표현한다.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도 이와 비슷한 절차가 진행된다. 상처 부위를 소독하여 오염균을 먼저 제거한 후에 적절한 연고를 발라 피부를 재생·회복하는 것이 일반적인 치료 방법이다.

이 일련의 과정이 교회의 입문성사 중 세례성사에서 실현된다. 엄마가 아기를 깨끗이 씻어주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살갗에 로션을 발라주는 모습을 연상하면, 세례 예식의 구성이 비교적 쉽게 파악된다. 엄마 편에서 ‘선 씻음, 후 바름’이고, 아기 편에서 ‘선 씻김, 후 발림’이다. 인간 편에서 ‘그리스도에 의한’ 씻김과 발림이 세례성사의 핵심 요소다.

타 종교도 물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예식을 거행하지만, 그리스도교 세례의 특징은 씻김과 발림이 긴밀히 연결된다는 점이다. 단 한 번의 인생을 사는 인간이 단 한 번의 세례로 축적된 자기 노폐물과 완전히 결별하고(씻김) 지워지지 않는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형성하여(발림) 새롭게 태어난다. 세례성사의 은총은 씻김의 결과인 ‘원죄와 본죄로부터의 해방’과 발림의 결과인 ‘하느님의 자녀 신원에 대한 확증’이다.

복음서는 ‘요한의 세례’와 ‘주님의 세례’를 의도적으로 구분한다. 요한의 세례가 ‘바름을 생략한 씻음’이라면, 주님의 세례는 ‘동시적인 씻음과 바름’이다. 곧 요한의 세례가 ‘다가올 심판에 대한 공포’ 앞에 씻음(제거)을 부각하였다면, 주님의 세례는 ‘다가올 구원에 대한 희망’ 앞에 씻음과 바름(결합)을 강조한다.

다가올 구원에 대한 희망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공생활이 세례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 3,14) 세례자 요한의 물음에 대한 해답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온 ‘성령의 확증’과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태 3,17)이라는 ‘성부의 확언’을 통해 제시된다. 성자가 세례를 받은 이유는 씻김과 발림의 세례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은총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참조) 하느님의 자녀됨’을 명시하기 위함이다.

파스카 성야 미사의 세례 서약 갱신은 세례성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로마 6,3-4 참조)임을 되새기게 한다. 그런데도 세례를 이 세상에서의 ‘은혜 보험’이나 저 세상에서의 ‘천국 증서’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적지 않게 분포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은총의 미래적 관점보다 현재적 관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미래적 관점의 은총은 과한 기복신앙에 몰두하게 하지만, 현재적 관점의 은총은 ‘지금 여기서’의 감사와 찬미의 태도를 자극하고 성령 안에서의 윤리 생활을 촉진한다. 교리서는 세례의 현재적 은총을 ‘상존 은총’(명백한 사유가 없는 한, 지속되는 은총)과 ‘성화 은총’(키 크는지 모르게 크듯, 차츰 성장시키는 은총)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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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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