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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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외면 대신 함께 눈물 흘릴 용기

[서효인 시인의 특별하고 평범하게] (3) 우리는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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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떡국을 먹었다. 2025년 12월 31일에는 아내와 간단히 장을 보았다. 아침부터 움직였어야 했는지 떡집에 떡이 많이 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떡국용 떡을 겨우 골라 들 수 있었다.

첫 아이는 떡국에 밥을 말아 먹는 걸 좋아한다. 작년보다 말이 조금은 는 것 같다. 천천히 또박또박 “맛있다”고 말하니 그게 그렇게 고마운 것이다. 둘째는 부드럽고 하얀 떡을 좋아한다. 이제 6학년이 되는데 아직도 김치를 멀리한다. ‘올해는 편식하는 습관을 조금씩 고쳐봐야지’ ‘고루고루 먹게 해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1월 1일 먹는 떡국이 귀하기 그지없다. 귀하지 않은 떡국이 있을 리가.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가고 이렇게 별 탈 없이 한 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는다니, 귀하고 특별한 일이다. 다행하고 감사한 일이다.

새해 첫날을 며칠 앞둔 날 저녁, 정확하게는 12월 29일 저녁 혜화동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 갔다. 「보고 싶다는 말」에 실린 시를 낭독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하게는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추모 낭독회를 위해서였다. 「보고 싶다는 말」은 참사 1주기를 맞아 40명의 시인이 집필한 추모 시를 모은 앤솔러지 시집이다. ‘보고 싶다’는 말은 유가족이 여태 속울음으로 뱉고 있는 말일 것이다. 이젠 이뤄질 수 없는 마음이라 더욱 쓰라린 말이기도 하다. 청탁을 받고 시를 쓰는 동안 죽음과 이별에 대해 생각했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심연의 슬픔이었다. 되도록 멀리하고 싶은 감정이기도 했다. 거대한 참담함은 침묵을 불러일으킨다. 침묵은 종종 외면되어 버리기도 한다.

시를 씀으로써 침묵과 외면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건 시인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부과된 당위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시인이 많았다. 행사를 시작하기 전 안부를 나누며 자연스러운 송년회 분위기를 즐기기도 했으나, 유가족의 사연을 들으면서는 온전한 송년이 어려웠다. 사고 이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건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요원하다.

첫발을 떼지 못하니 유가족 보상과 참사 방지 노력 또한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댓글로, 가짜뉴스로 유가족의 팔과 다리에 못을 박았다. 뉴스에서, 무안공항에서, 낭독회 현장에서 본 그들은 피를 흘리며 맨발로 걷는 듯했다. 당시 희생자는 성탄 맞이 가족여행 중이었다. 곗돈을 모아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그 해 마지막 업무를 위한 출장 중이기도 했다.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가족들과 새해 떡국을 먹지 못했다.

우리는 우선 충분히 슬퍼해야 할 것이다. 당신 가족이라면 어떻겠느냐는 물음, 우리 가족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위안?. 이런 따위로는 이 참사를 막지 못한다. 희생자를 온전히 애도할 수도 없다. 우리는 우선 슬퍼해야 한다.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뜨거운 눈물을 마음껏 흘릴 용기를 가져야 한다. 수록된 시 일부를 아래에 소개한다. 이 슬픔을 나누기 위해. 끝없는 애도를 청하는 마음으로.

“여행 가방을 열면 우리를 위한 선물도 분명 들어 있을 것이다. (?) 선물이 비록 슬픔이어도 네가 주면 받아야지. 기념품처럼 오래 간직해야지.”(유병록, ‘우리 곁으로 슬픔이 착륙한다’에서)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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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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