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교회 설립 당시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를 비롯한 북경 거주 서양 선교사들은 조선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기적 같은 일로 하느님의 섭리라고 하나같이 평가했다. 탁희성 작, ‘이승훈 세례’.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섭리로 우리 민족이 자발적으로 당신에 대한 신앙을 갖도록 이끌어 주셨다. 이번 호에는 수표교 이벽의 집에서 거행된 세례식으로 탄생한 조선 가톨릭 신앙 공동체에 대한 당시 서양 선교사들의 반응을 살펴보기로 한다.
조선 가톨릭 신앙 공동체 탄생에 대해선 이승훈(베드로)이 1789년 윤유일(바오로)을 통해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알려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1801년 신유박해 발발 10년 후인 1811년(신미년) 조선 교회 재건을 위해 권기인(요한), 이여진(요한), 신태보(베드로), 조동섬(유스티노), 홍우송 등이 구베아 주교에게 보낸 서한에 자세히 설명돼 있었다.
서한에 담긴 놀라움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는 선교사 없이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것을 “하느님께서 행하신 기적”이라고 놀라워했다.
“복음이 조선 왕국에 전해지고 퍼져나갈 수 있게 된 것은 진정 하느님이 직접 하신 일입니다. 이 새로 태어난 천주교회는 태어나자마자 박해의 폭풍우를 만나 5명의 순교자가 흘린 피와 수많은 훌륭한 신앙의 증거자들이 보여준 덕행으로 더욱 굳건해졌으니 마치 초대 그리스도 교회와 흡사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위대하시고 선하신 하느님께서 초대 교회들이 그러하였듯이 조선 천주교회도 믿는 이들이 날로 늘어나게 해 주시고, 그들의 덕 또한 더욱 깊어질 수 있도록 해 주시어 마침내 그들이 천상 행복의 열매들을 많이 거두어들일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비는 바입니다. (?) 지극히 자애로운 하느님께서는 최근 몇 년 동안 당신의 자비하신 눈길을 이 조선 왕국으로 돌리시어, 이제껏 어둠 속에서만 지냈던 이 나라 백성 위에 빛을 던져 주시고, 사람들 눈에는 별로 신통치 않아 보이기에 그만큼 더욱더 놀랍기만 한 그런 방법을 통해서 그들을 평화와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 ‘이것은 하느님이 친히 하시는 일입니다’라고 한 탈출기의 말씀(8,15)과 ‘오! 하느님의 풍요한 지혜와 지식은 심오합니다’라고 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로마 11,33)이 생각나곤 합니다. (?) 또한, 성령께서 하신 일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 누가 그토록 약하디약한 도구를 이용하여 (?) 그토록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신앙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게 하는 놀라운 기적을 이루어 낼 수 있단 말입니까? 또한, 성령께서 하신 일이 아니라면 (?) 육신과 세속의 유혹을 물리치고 온갖 끔찍한 고문을 받다가 죽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구베아 주교가 사천대리구장 디디에르 주교에게 보낸 1797년 8월 15일자 편지- 윤민구 신부, 「한국 초기 교회에 관한 교황청 자료 모음집」)
구베아 주교가 본 조선 교회의 시작·복음화
복음이 조선 왕국에 전해지고 퍼져나갈 수 있게 된 것은 진정 하느님이 직접 하신 일이며 기적이고, 성령께서 하신 일이라는 구베아 주교의 평가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지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구베아 주교의 관점은 “하느님께서는 당신 선성(善性)과 지혜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고 당신 뜻의 신비를 기꺼이 알려 주시려 하셨으며, 이로써 사람들이 사람이 되신 말씀,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다가가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도록 하셨다”라는 교회 가르침과 부합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헌장」 2, 「가톨릭교회 교리서」 51)
‘우리 민족이 자발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가들의 일반 견해와 달리 구베아 주교는 하느님께서 구세사 여정에서 특별히 아브라함과 모세 등을 선택하셨듯이 조선인들을 통해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표현했다.
구베아 주교가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첫째, 아주 짧은 기간에 많은 외교인이 개종한 일. 둘째, 초보 수준의 교리 지식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일. 셋째, 박해를 일으킨 임금의 마음이 빨리 변화된 일. 넷째, 생명의 위협을 무릅써 가며 사제 영입을 위해 헌신한 밀사들의 열성. 다섯째, 소현세자가 북경에 와서 성물들을 직접 챙겨 가져간 일. 여섯째, 성사 집행과 제사에 관해 보내온 조선 교우들의 질문들, 일곱째, 그 편지와 질문 속에 드러난 조선 교우들의 깊은 신심과 열성적인 정신들. 여덟째, 조선에 한 번도 복음이 전해진 적이 없다는 점이다.(최인각 신부, ‘한국 천주교회 설립에 대한 평판’, 「교회사학」 8호 278쪽 참조)
조선 가톨릭교회 탄생, 성령께서 하신 일
구베아 주교 재임 당시 북경에서 궁정 수학자로 활동하던 라자로회 프랑스 선교단장 니콜라 요셉 로 신부도 “조선 교회 설립은 기적 같은 사건”이라며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 레오나르도 안토넬리 추기경에게 보고했다.
「한국천주교회사」를 저술한 달레 신부 역시 조선 교회 설립을 하느님 섭리라고 보았다.
“서기 1784년 마침내 조선을 위하여 구원의 날이 밝았다. 그때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천주교 신앙을 이 나라에 결정적으로 심으셨다. 영광스러운 조선천주교회는 이때 시작되었고. (?) 하느님의 섭리가 조선에 복음을 들여 보내기 위해 쓰인 주요한 연장은 별호를 ‘벽’(檗)이라고 하는 이덕조였다.”(「한국천주교회사」 상, 299쪽)
조선 교회 설립 당시 북경에서 활동하던 서양 선교사들은 우리 민족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것을 하느님의 섭리, 무엇보다 성령께서 하신 일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