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의 생존 법칙인 ‘약육강식’과 대비하여 ‘강자 앞에서 약하게, 약자 앞에서 강하게’ 처신하는 자세를 비꼬는 ‘강약약강’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우리 사회는 재산·권한·능력·건강 등의 한시적 척도로 강자와 약자를 분류한다. 대부분 사람은 강자로의 진입을 인생의 최종 목표, 행복의 필수 요건으로 간주한다. 강자는 자신이 선점한 지위를 고수하려고, 약자는 강자 대열에 합류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한다. 강자와 약자의 구분이 부동의 이분법 구도로 고착되어 약자에서 강자로 변환할 수 없다는 체념은 다수의 약자에게 적지 않은 피해의식을 남긴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본래 약자라는 사실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보호 없이 생존할 수 없는 인간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고통으로 번민하며 살아가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약자로 생을 마감한다. 강자는 ‘본래의 약함’을 해소한 초인(超人)이 아니라, 본래의 약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시대와 문화가 설정해 놓은 상대적 척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신론자는 본래의 약함을 단호히 부정하거나 한시적 지표의 우세가 본래의 약함을 보완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유신론자의 첫째 관문은 본래의 약함에 대한 긍정과 원초적인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수용이다.
자신을 방어할 힘이 없는 ‘약함’을 대표하는 어린양은 구약성경에서 속죄 예식의 번제물(탈출 29,39; 민수 28,9 참조)과 파스카 축제의 잔치 음식(탈출 12,5 참조)으로 사용되었다. 이 약한 어린양을 하느님께서 ‘목자가 팔로 모아 품에 안듯이’(이사 40,11 참조) 극진히 보살핀다. 곧 어린양은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을 드러내는 표지다. 어린양 개념을 도입하는 요한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발언을 통하여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1베드 1,19)가 세상을 구원하였다. 세상의 죄를 없애는 ‘권능’(강함)과 ‘어린양’(약함)의 연결은 모순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이성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역설(逆說)은 하느님의 자기 현현 양식이다. ‘전능한’(강한) 하느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똑같은’(약한) 인간으로 태어나고 죽으심으로써 세상을 구원하셨다. 어둠 속에 빛으로 오신 성자 그리스도와 같이, 하느님의 전능성은 절대 강자의 권력 행사 방식이 아니라 ‘상호 대립’(강함-약함; 첫째-꼴찌; 높음-낮음)이 ‘상호 일치’(약함 안에 강함; 꼴찌 안에 첫째; 낮음 안에 높음)를 이루는 방식으로 발휘된다.
요한 복음은 ‘요한의 세례’와 ‘주님의 세례’를 ‘물의 세례’(본래의 약함에 대한 긍정)와 ‘성령의 세례’(보호·강화하는 하느님에 대한 확증)로 구분한다. 물의 세례는 성령의 세례를 준비하고, 성령의 세례는 물의 세례를 완성한다. 성령 하느님은 우리 모두가 지닌 본래의 약함 안에서 우리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며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성령의 보호하고 강화하는 은사를 ‘생명’과 연결한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의 세례는 본래의 약함을 긍정하는 이에게 생명(강함)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