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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과 죽음의 두려움, 좋은 관계에서 길을 찾다

[서민선 아녜스 작가의 ''노년을 읽습니다''] 4. 박산호 작가의 「죽음을 인터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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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제미나이 제작
 
“좋은 관계란 존재한다
좋은 관계가 모여
우리의 노년과 죽음을
덜 슬프고 덜 외롭게 만들 것이다”


내 작은아버지는 장례업 종사자다. 어느 날 훌쩍 도시를 떠난 작은아버지께서 남쪽 마을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그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을 때, 나는 매우 뜻밖이었다. 죽음에 관계된 일이 업(業)이 되다니. 어렸고 젊었던 나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직업이란 밝은 일이어야 좋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결혼식에 관계된 일, 생명의 탄생을 돕는 일, 생기 발랄한 아이들과 관계하는 일, 이왕이면 그런 밝고 명랑한 직업이 종사자에게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믿었다.

중년이 된 나는 이제 그 너머의 것을 안다. 모든 직업은 사람을 살게 한다. 직업이 사람에게 밥과 옷을 주고 삶을 준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제 몫의 의미를 갖는다. 특히 죽음에 관계된 직업은 가없이 숭고하다. 나의 업이 누군가의 마지막에 관여하는 중이라면 한순간도 무의미할 수 없을 것이다.

작년 1월 92세의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우리를 도운 장례지도사는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분이었다. 장례를 주관하는 그분의 경건하고 차분한 태도는 중년의 우리를 안도하게 했다. 안정적인 표정과 나직한 목소리 그리고 정돈된 태도. 장례지도사는 혼이 나가버린 우리 가족에게 때마다 할 일을 알려주고 다음 단계로 이끌었다.

박산호 작가의 책 「죽음을 인터뷰하다」는 이른바 죽음 전문가 5인과의 대화를 담은 책이다. 요양보호사·장례지도사·펫로스 전문 심리상담사·종교인(가톨릭 사제)·호스피스 전문 의사. 모두 죽음에 맞닿아 있는 직업들이다. 이들과의 대담은 짐작과 달리 두렵거나 음울하지 않다. 오히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간의 신비롭고 다정한 대화를 읽다 보면 서서히 마음이 충족됨을 느낀다.

김지수 기자는 추천사에서 “칙칙하고 까끌한 죽음이라는 수의를 이토록 평안한 대화로 디자인해 준 박산호가, 고맙다”라고 말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평안한 대화라니. 책 제목과 책 표지, 책 추천사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제 죽음과의 전면전인가. 근래 들어 노년·노화·노인 등 나이 듦을 다루는 책과 글이 많아졌다. 우리 시대는 노년을 잘 알아야 잘 늙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이제 죽음 또한 그 단계로 들어섰다. 피할 수 없는 죽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는데 즐길 수 없으므로 차선으로 좋은 죽음과 편안한 죽음을 맞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5인의 인터뷰이는 각각 다른 방면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고 답한다. 그리고 읽는 이로 하여금 인생과 죽음을 숙고하게 한다. “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면서 죽음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게 됐잖아요. 그 지식이 저를 위로해 줬어요. 그렇게 정보와 지식이 나를 위로해 줄 때가 많아요.” 호스피스 전문 의사 김여환 님의 말이다. 나도 그랬다. 살면서 항상 지식과 정보가 나를 위로했다. 그것만큼은 정직하게 쌓여서 정직하게 나를 위로했다. 사람과의 관계는 때로 갈등하고 때로 서운하기도 했다. 가족도 친구도 그랬다. 그들은 나에게 힘을 주는 만큼 나를 기운 빠지게 하기도 했다. 그렇다. 늘 좋은 관계란 세상에 없다. 하지만 지식과 정보는 변하지 않는다.

이런 내 냉소적 마음을 흔든 것은 책 속 또 다른 인터뷰이, 홍성남 신부와의 대화였다. “내가 힘들 때 도와주러 온 사람은 하느님이 보냈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건강한 거죠. 또 누가 나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을 때도 이 사람은 하느님이 보냈구나, 생각해야 하고.” 이런, 큰일 날 뻔했다. 나는 가톨릭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종종 잃는다. 나는 하느님의 개입을 우연 또는 운으로 여기는 우를 종종 범한다. 하지만 독서를 통해 이렇게 본래의 나로 다시 돌아온다.

홍성남 신부의 조언은 극단적이지 않아서 좋다. 그는 종교가 가르치는 이웃사랑이란 윈-윈이지,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오호, 그렇다고? 일방적 헌신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좀 해 볼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단박에 든다. 모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범상한 나로서는 왠지 솔직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삶의 마지막을 직시하는 직업을 통해 인생과 죽음을 배운다. 그 배움이 언젠가 죽을 우리를 위로한다. 또한 죽음 전문가의 다정한 말과 태도, 그들의 철학을 통해 위로받는다. 좋은 관계란 존재한다. 그 좋은 관계들이 모여 우리의 노년과 죽음을 덜 슬프고 덜 외롭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교회와 교회 공동체가 도울 수 있다. 우리는 좋은 관계를 사명으로 받은 사이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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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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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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