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아’(히브리어 Ben-Adam, 벤 아담)라는 표현은 에제키엘 예언서에서만 100여 번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아들’은 생로병사, 곧 생성 소멸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인간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에 비해 다니엘서에 나오는 ‘사람의 아들 같은 이’(아람어 Bar-Enash)는 에제키엘 예언서의 사람의 아들과는 대조적으로, 모든 민족과 모든 나라가 섬기게 될 ‘영원한 임금님’을 뜻합니다.
이미 전기 유다교 전통에서부터,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이분이 바로 다윗 집안에서 나올 구세주(메시아)로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네 복음서에서도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본디 사람(Adam, 아담)은 영원하신 분을 닮아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세 1,26-27) 이어서 그분께서는 인간에게 자손이 번성하도록 하시고, 모든 피조물을 잘 가꾸고 다스리도록 축복해 주십니다.(창세 1,28 참조)
악마의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한 첫 인간은 그분을 피해 숲속에 숨습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나타나 아담(사람)에게 물으십니다. “너 어디 있느냐?(히브리어 Ayekah)”(창세 3,9)
이 물음은 그분께서 어제도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던지시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나의 실존 전체를 꿰뚫어 보시며 던지시는 그분의 물음은 실은 구원에로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모두 부모님을 통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축복의 주인공들입니다. 나아가 첫 조상 아담이 지은 원죄의 늪에서, 세례성사로써, 그리스도를 입은 새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 그리될 것입니다.”(로마 6,5)
바오로는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1)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2코린 5,17)
세상에서, 온 우주를 통틀어 ‘나(我)’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모든 것을 잘 가꾸어 가도록 우리 손에 맡기셨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은 이제 우리의 책임입니다.
주님께서는 성결법을 통하여 우리 모두를 사랑으로 초대하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 먼저 ‘나’의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깨달음과 함께 이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모세 율법의 초석으로 가르치십니다.(마태 22,37-39 참조)
우리의 생각과 능력만으로 무슨 일을 하기보다는, 다음 말씀으로 기도드리며 일을 시작하면 어떻겠습니까?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
글 _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원로사목·성사전담, 성서주석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