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문자를 발견한 이래, 인류는 꾸준히 지식을 축적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와 같은 자연스러운 지식의 증가를 무색하게 하는 큰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엄청난 양의 지식을 자체 학습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인간의 지식은 거의 무한대로 증식해 가고 있다.
‘지식은 곧 힘이다’라고 외치며 권력과 행복을 추구하던 인간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 열린 셈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인공지능은 현대판 소피스트이며 지식은 난무하고 지혜는 사라진다’라는 비판도 등장한다. 더 나아가 AI가 가져올 급격한 변화가 ‘인간의 존엄성’마저 위협할 것을 우려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연 축적된 지식이 인간의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지혜 차원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러한 지식과 지혜의 대비는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성적 덕’에 대한 성찰에서 제시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전통을 받아들여 그리스도교 지혜의 전통과 융합시킴으로써 훨씬 더 풍부하게 발전시켰다. 우리는 그의 가르침으로부터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을까?
지성적 덕에 관한 철학적 성찰
‘철학(philosophia)’은 처음부터 ‘지혜에 대한 사랑’을 추구했지만, 지혜를 제1원리들에 대한 인식과 직접 연결시킨 학자는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선 단련을 통해 얻어지는 ‘품성적(도덕적) 덕’과 주로 가르침에 의해 얻어지는 ‘지성적 덕’을 구분하고, 지성적 덕을 사변이성의 덕과 실천이성의 덕으로 세분했다. 스콜라 학자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지식(scientia), 이해(intellectus), 지혜(sapientia)라는 사변이성의 덕들과 기예(ars)와 현명(prudentia)이라는 실천이성의 덕을 구분해 활용했다.
토마스는 우선 덕에 대해 논하며 사변이성의 덕들에 집중한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 알려지는 진리들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덕을 ‘이해’라고 부른다. 백지상태(tabula rasa)에 있던 지성이 이해의 덕에 의해 제1원리들을 파악하면, 지성은 이제 추론적 탐구의 출발점들을 갖추게 된다. 추론을 통해 인간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데, 특정 부류의 대상에 대한 진리를 위한 덕이 ‘지식’(학문)인 반면에, 모든 인간 인식의 제1원리를 인식하기 위한 덕은 ‘지혜’라고 불린다.(I-II,57,2)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지성적 덕들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지만, 토마스는 이것들은 선을 행하는 한에서가 아니라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준비해 주는 한에서 덕일 뿐이라고 주장했다.(I-II,57,1)
지식은 특정 대상의 진리 추구하지만…지혜는 모든 인류의 원리 통찰하는 힘
성령에 의해 인도되고 구원 받으려면…파편화된 지식 넘어서는 지혜 필수적
지식이 지닌 근본적인 의미 통찰하고…마음 속 지혜로 하느님과 친교 이뤄야
성령의 선물인 지식과 지혜
그뿐 아니라 토마스는 신앙에 대한 논고에서 이와는 전혀 다른 원천을 지닌 ‘성령의 선물’로서의 이해, 지식, 지혜에 대해서 논한다.(II-II,4,8) 이 선물들에 대한 논의는 이사야서 11장 2절(불가타판)에서 유래했고 그리스도교 사상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티누스는 고유한 의미에서 ‘지혜’라고 불려야만 하는 영원하고 신적인 대상들을 지성적으로 파악하는 일과 ‘지식’의 영역에 속하는 시간적이고 인간적인 대상들에 대한 추론적인 인식을 구별했다. 토마스는 이러한 이론을 수용해서 성령에 의해 인도되고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 선물들에 관해 상세히 설명한다.(I-II,68,2)
“지식이라는 명칭은 … 일종의 판단의 확실성을 내포한다. 만일 판단의 확실성이 가장 높은 원인을 통해서 일어난다면, 그것은 ‘지혜’라는 특별한 명칭을 가진다. … 그런데 단적으로 가장 높은 원인, 즉 하느님을 알고 있는 사람이 단적으로 ‘지혜로운 이’라고 언급된다. 따라서 신적인 사물들에 대한 인식이 ‘지혜’라고 불린다. … 그래서 지식의 선물은 오직 인간적인 사물들 또는 창조된 사물들에 관한 것이다.”(II-II,9,2)
이렇게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유산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유산을 종합해서 이 세상의 사물에 관한 연구에 필요한 ‘지식’을 능가하는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식을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지혜의 필요성
그렇지만 토마스는 ‘인간의 지식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악덕과 다를 바 없다’던 아우구스티누스적 전통과 달리 지식에게도 긍정적인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토마스에 따르면, ‘더 높은 것에 의한 판단은 낮은 것에 의한 판단을 대체하거나 압도하지 않는다.’(II-II,120,1,ad2) 토마스는 당대 발견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 대표되는 지식을 교만과 호기심이라고 평가절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지식 안에 담겨 있는 근본적인 제한성을 주목하며, 인간의 참행복은 오직 ‘지혜’를 통해 도달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지혜는 지식의 결과물들을 종합하고, 그것들이 지닌 의미를 통찰하는 능력을 제공한다. 따라서, 지혜 없이는 지식이 파편화되거나 제한된 관점에 머물 수 있다. 또한 지혜는 단순히 지식을 ‘통제’하는 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삶의 의미나 도덕적 판단에 올바르게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혜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가치들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측면에서 철학이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지혜란 이론 차원에 머물며, 참행복의 실현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계를 지닌 것이다. 따라서 토마스에게 지혜라고 불린 신학과 지혜의 선물은 신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궁극적 목표를 이해하고 추구하는 데 필수적인 깨달음이었다.
우리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방대한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열렸지만, 이에 만족해서는 안 되고 정보의 축적을 넘어 참된 지혜를 추구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실재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부분과 전체를 통합하며, 의사결정과 그 결과를 숙고하는 능력”으로서의 ‘마음의 지혜’를 강조했다.
그리고 교황청 인공지능(AI)에 관한 문헌(Antiqua et Nova)에 따르면, “어떤 사람의 완성도는 그가 가진 정보나 지식량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사랑할 줄 아느냐로 측정”된다. 바로 이 마음의 지혜가 끝없이 발전하는 과학적인 지식들을 인간 중심으로 활용하고, 전인적 발전, 인류의 공동선, 창조질서의 보전을 넘어, 하느님과의 완전한 친교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비출 수 있다.
글 _ 박승찬 엘리야 교수(가톨릭대학교 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