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특수학교 졸업식이라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번에 식이 열렸다. 우리 가족은 6년 전 같은 장소에서 아이의 유치원 졸업식을 함께한 적 있으니,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셈이다. 시간의 등을 누가 자꾸 떠미는지, 녀석은 뒷모습만을 보인 채 앞으로, 앞으로만 간다.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르며, 너무 빠르다고 언제 여기까지 온 거냐고 물을 뿐이다. 아리송해 하면서, 숨을 헐떡거리면서.
졸업식이 주는 뿌듯함과 애틋함은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수학교 졸업식은 좀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자그마한 강당에는 휠체어가 지나다닐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란 테이프가 복잡한 도로의 차선처럼 바닥에 붙어있었다. 그것을 밟을까 봐 조심하며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전날 주문한 꽃다발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나의 졸업식은 어땠더라,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었던가, 끝나고 중국집에 같이 갔었나?. 상념에 빠지는데 휠체어에 탄 졸업생부터 우리가 이날의 주인공이라는 듯 당당하게 강당에 입장했다.
우리 아이는 도우미 선생님의 손을 잡고 자리를 잡았다. 본래 앉는 자리에는 혼자 잘 찾아가건만 새롭고 낯선 환경에선 주춤대고 만다. 저 아이가 이제 중학생이 되는 걸까? 아이는 아직 언어 표현이 서툴다. 키도 또래 평균에 비할 바 못 된다. 빠르게 달리지도 못하는 것 같다. 긴 글은 읽지 못한다. 받아쓰기도 해본 적 없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이제 중학생이 된다. 중학생이 되는 아이를 상상해본 적이 별로 없다. 녀석에게 무얼 바란 적도 없다. 그런데 나는 걱정한다. 아이가 꼭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것처럼. 아이에게 중요한 미션을 던져준 사람처럼.
나의 졸업식에는 어머니가 오셨다.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데, 사진을 보니 그렇다. 당시에는 졸업생 중에 성적이 우수한 몇 명에게 따로 우등 상장을 주었는데, 나는 당연히 받을 거로 기대했으나 결론적으로 우등상 명단에 없었다. 마지막 학기 기말고사를 망친 게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기대가 무언지는 모르면서, 실망할 어머니를 떠올렸다. ‘우등’하지 못한 채로 졸업이라니, 나조차 내가 별로였다.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졸업이란 걸 했다.
아이는 꽤 즐거워 보였다. 선생님들 공연에 손뼉 치고, 선배들의 율동 공연에 몸을 흔들었다. 뭐든 손에 쥐는 걸 싫어해 바닥에 툭 던져버리곤 하는데, 그날따라 손에 든 꽃다발을 꼭 안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유치원 졸업생들이 보였다. 젊은 부부가 아이 앞에서 방긋방긋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나에게는 6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간 나는 어떤 시간을 보냈나. 무엇을 원하게 됐고 무엇에 실망하는 사람이 되었나. 아이는 이곳에서 6년을 지내며 자기 방식대로 성장했다. 분명한 성장을 눈앞에 보고서도 나는 불민한 생각뿐이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있는데, 아이가 옆에 와 섰다. 지금 이 순간을 남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