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는 “마흔은 청춘의 노년, 쉰은 노년의 청춘”이라고 말했다.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엄청난 신선함을 느꼈다. 쉰을 청춘이라고 말하다니. 다가올 예순·일흔·여든 이후를 생각할 때 확실히 쉰은 노년 안에서 청춘이다. 강연이 있을 때 나는 이 명언을 종종 인용한다. 그런데 지난가을 북토크에서 만난 한 독자가 이렇게 말했다. “거기서 마흔은 쉰으로, 쉰은 예순으로 고치는 것이 요즘 시류에 맞지 않겠어요?” 아하, 그렇지. 빅토르 위고는 19세기 사람이고 지금은 21세기이니 요즘으로 치자면 “쉰은 청춘의 노년, 예순은 노년의 청춘”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구나. 100세 시대인 요즘 실로 예순이라는 나이는 노년의 초입 격이다.
나는 「마녀체력」을 쓴 이영미 작가의 오랜 팬이다. 이영미 작가는 운동에 진심인 것으로 유명한데 마흔에 수영을 시작으로 달리기·자전거 등을 섭렵했다. 전형적인 저질 체력에서 철인 3종에 도전하기까지의 여정을 모아서 「마녀체력」을 썼고 예순을 앞두고는 「미리, 슬슬 노후대책」을 썼다. 여기서 노후대책이란 ‘노년에 후회 없도록 대비하는 인생 책’의 줄임말이다.
작가는 책에서 노년을 대비하여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선배로서 모든 노하우를 전한다. 그런데 마치 큰언니가 동생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거는 느낌이다. 모든 것은 건강에서 시작되니까 체력을 키워라, 그런데 노년이 되면 체력만으로 충분치 않다. 전방위적 접근이 필요한데 지금부터 들려줄 테니 잘 들어봐라. 그러니까 이 책은 노년의 자기계발서다. ‘본격 노년 준비 실무서’라고 해야 할까.
작가는 서문에서 말한다. 내리막길에서 설레려면 준비를 해야 한다고. 준비해야 할 것은 정말 많았다. 작가는 그것을 속성별로 분류했는데 ‘의젓한 태도’, ‘쫀득한 관계’, ‘줄기찬 도전’, ‘살피는 마음’, ‘꼿꼿한 판단’이 그것이다. 일단 근사한 노년이 되려면 본인의 삶에 대한 태도를 재정비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다져야 한다. 다음으로 노년에도 여러 가지 도전을 하면서 본인의 삶을 풍부히 해야 하고 무엇보다 주변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신체는 노화해도 판단력을 잃지 않아야 꼿꼿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 정말 노년에 대한 꽉찬 조언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중에서도 ‘줄기찬 도전’ 꼭지가 매우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읽으면서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슬슬 나도 시작해야지, 결심을 다졌다. 80대에도 팔굽혀펴기와 플랭크를 즐겼던 근육질 할머니 긴즈버그, 20년 기자생활을 접고 전문화가로 변신한 김미경 작가, 마흔넷에 토지 1권을 쓰고 예순아홉에 완간한 박경리 작가, 그리고 27년간의 편집자 생활을 뒤로하고 글을 쓰고 강연을 하게 된 작가 본인. 책에는 줄기차게 도전하는 멋진 노년들이 소개된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딴짓을 시도하라는 조언을 읽을 때에는, 언젠가 만났던 70대 여고생이 떠올랐다. 한 달이라도, 아니 하루라도 젊을 때 시작해야겠다는 결단으로 늦은 나이에 한글을, 초등과정을, 중등과정을 차례로 밟은 문해학교 학생이었다. 그녀는 평생의 갈망과 설움을 공부를 통해 해소했다. 평생의 한을 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나아지는 과정에서 평생의 결핍이었던 문맹을 벗어난다면, 그것보다 더 만족스러운 자기계발이 어디 있을까.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 자기계발도 하고 인생 설움을 없애니 심리 건강에도 좋다.
자기계발이라는 것이 꼭 새로운 도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근본적으로 나에게 부족한 것, 그러니까 내가 결핍을 느끼는 어떤 것을 정상성의 범주에 들어가게 하는 것도 자기계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년째 워킹맘으로 살고 있는 나는 늘 시간에 쫓긴다. 나에게는 시간이 부족한 삶이 평생의 결핍이다. 특히 하루종일 책 한 장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내 삶 전체를 회의하게 했다. 한창 아이 키우느라 바쁠 때는 더욱 그랬다. 내가 열망하는 것은 독서 하나인데, 그걸 못 하고 살다니.
하지만 집안일하고 아이 돌보고 회사 일하고, 그런 것들로부터 나는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스위치 끄듯 끝이 날 것이다. 그렇다면 노년이 되면 나는 자유롭게 마음껏 읽고 쓸 것이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출근 준비도 하지 않아도 되고, 월요일이 중요하지 않으니 일요일 밤늦게까지 읽고 써도 된다면, 내 인생 그보다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노년에는 많은 것이 사라지고 가벼워진다. 거기에는 가족 돌봄도 집안일도 포함된다. 내가 챙길 대상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라지면 나는 무척 슬프고 외롭겠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자유로워질 것이다. 절대 흔쾌하고 흡족하지는 않은 자유지만 어쨌든 그로 인해 미래가 기다려진다면, 그것 참 다행이다. 그러니 이제, 각자의 노년 계발에 집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