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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 「돈키호테」 :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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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가 “모든 소설가는 어떤 식으로든지 세르반테스의 자손들”이라고 극찬한 것처럼, 유럽 문학사에서 최초의 소설로 여겨지는 「돈키호테」는 그 어떤 작품과도 비교될 수 없는 독보적 위치에 있다. 특히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그려내는 주옥같은 우정은 400년이 넘은 세월에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16세기를 거치면서 우정의 시학은 다양한 장르에서 중요한 문학적 서사 구조였다. 정치적, 문학적 측면에서 황금 시기였던 당시의 스페인은, 동시에 여러 위기에 직면하면서 상업화, 도시화, 계층 이동에 따른 불안의 변혁기를 겪고 있었다. 세르반테스는 우정이라는 가치를 통하여 흔들리는 사회의 토대를 다시 세우려 한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여러 가지 대조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돈키호테는 기사도 문학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상을 추구한다. 그러나 망상에 사로잡힌 방랑 기사이다. 산초는 소박한 농민으로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두 사람의 대조적인 성격, 가치관, 세계관, 그리고 사회 신분은 희극적이면서도 진지한 갈등을 만들어낸다. 현실주의자인 산초가 주인의 이상적 환상에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반복적인 말다툼이 일어난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종자가 믿음이 부족하다며 화를 내고 비난하게 된다.


서로 다름에서 오는 긴장과 갈등은 새삼 놀라운 일도 아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역사를 되돌아볼 때, 가정 안에서, 사회 안에서 혹은 국가 간의 싸움은 대부분 서로 다름에서 시작하였다.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서로 다름은 누군가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창조의 핵심적인 원리이다. 하느님은 6일 동안 매일 다양한 피조물을 창조하셨다. 카이사리아의 바실리우스는 그의 저서 「창조의 6일 강론」에서, 다양한 자연 세계는 하느님의 지혜를 읽을 수 있는 “하나의 책”과 같다고 하였다.


제2의 성경인 피조물의 각각 고유한 창조 목적은 반목과 경쟁, 혼돈과 상대주의, 우연적 사건이 아니다. 창조주의 선함과 질서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서로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고, 창조주의 질서 안에서 일치를 이룬다. 다툼과 갈등을 일으킨 돈키호테와 산초의 서로 다름은 길 위의 여정에서 우정의 가치를 통하여 일치를 이룬다.


망상에 사로잡힌 기사 돈키호테·현실적이며 소박한 농민 산초


모험 속 다툼과 갈등 많았지만 서로의 생각 받아들이고 존중


솔직한 대화로 장벽 넘어서면 진정한 마음의 일치 이룰 수 있어


16세기 유럽 귀족들은 자신의 인품과 상관없이 귀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도덕적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반면, 하층계급 사람들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사회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귀족인 돈키호테와 농민인 산초는 명령과 순종의 관계라는 틀 안에 있었지만, 산초는 종종 주인의 명령에 반하는 현명한 조언을 한다. 돈키호테는 도덕적 권위를 주장하며 산초의 평민적 지혜를 무시하며 갈등이 발생한다. 속담을 사용하는 산초에 돈키호테는 “속담은 시대의 지혜를 응축해 놓은 것이지만, 너는 종종 그것들을 억지로 끌어다 써서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처럼 보이게 한다”라고 질책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산초의 조언을 무시할 때마다, 두 사람 모두 사회적 망신과 육체적 처벌을 겪게 된다. 모험을 거듭하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계층적 구분이 흐려진다. 마침내 돈키호테는 산초를 동등한 대화 상대이자 조언자로 대한다: “산초, 네 말이 옳다. 둘시네아를 만나러 가기 전에 공주를 동행하라는 네 조언을 따르겠노라.” 그러면서 그를 “친구,” “아들,” 심지어 “친구이며 안내자”라고 호칭한다. 진정한 우정이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초월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초기 교회도 민족, 계층, 성별, 사회적 지위에 의한 사람들 사이의 차이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레고리오 성인은 부자와 가난한 자, 남성과 여성 등의 불평등으로 인한 다툼과 분열은 낙원에서 타락한 후에 생겨난 것이라고 비판한다. 성 유스티노 순교자는 「제1변증서」에서 우리가 “이전에는 서로를 미워하고 해치며, 풍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종족의 사람들과는 함께 살기를 거부하던 자들이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오심 이후 서로 친밀하게” 지낸다고 언급하며, 그리스도교가 인종적, 민족적 갈등의 장벽을 허물었다고 강조한다.


유다인과 유다인이 아닌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겪고 있었던 갈라티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3,28)라고 권고한다.  역할의 구분을 상대화하면서, 근본적인 평등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교회사에도 “천한 백정을 점잖게 대해 주니 내게는 천국이 두 개 있다”라고 고백한 황일광 시몬 성인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넘을 수 없어 보이는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고백록」에서 우정이란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라고 정의하였다. 서로 간의 차이는 그대로이지만, 동일한 가치를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동등한 친구가 된다. 제2부 도입부에서 산초가 자신의 주인에게 한 시골 소녀를 마법에 걸린 둘시네아 공주라고 우기는 유명한 장면에서, 이제는 종이 주인의 이상적인 기사도 세계관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 자기 상상력으로 마법을 만들어 내는 변화를 보게 된다.


또한 가족들의 계략에 속아 현실로 돌아와서 삶의 활력을 잃고 죽어가는 돈키호테에게, 산초는 다시 모험을 떠나자고 간절히 애원한다. “죽지 마세요, 주인님. 이 세상에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어리석음은 더 이상 해볼 것도 없이 스스로 죽게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산초는 이제 주인의 이상적 비전을 자신의 경험적 현실보다 우선시하며, 주인의 가치관을 내면화시켰다. 친구가 되어가는 여정에서 산초는 점차 이상주의를 받아들여 “돈키호테화”되고, 돈키호테는 현실 감각에 눈을 뜨며 “산초화”되어 마침내 둘은 같은 정신으로 연결된다.


산초는 처음에 돈키호테가 약속한 물질적인 보상을 기대하며 따라갔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보살피고, 존중하며, 역경 속에서도 서로를 버리지 않고 마음의 일치를 이룬 동등한 친구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이 멈추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화였다. 비록 산초의 어설픈 속담, 불평, 주인의 망상을 노골적으로 의문시하는 항의, 그리고 돈키호테의 얼토당토않은 일장 연설과 꾸지람 등으로, 결국 두 사람의 대화는 대부분 충돌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는 솔직하고,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진정한 친구가 된다.



글 _ 김치헌 바오로 신부 (예수회·서강대학교 영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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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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