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에 연년생 아이 둘을 낳았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이제 제법 어엿한 청소년티가 난다. 이제 다 키웠다고 말한다면 과장이겠지만 갓난아기일 때의 고투와 젖먹이일 때의 피로를 생각하면 이 시간을 버티고 지내온 가족에게 대견함을 느낄 만하다.
특히 아내에게 그렇다. 비혼과 딩크족, 출산율과 인구 소멸에 관한 거창한 뉴스를 찾아볼 것 없이 주변을 둘러보면 나의 결혼과 출산은 꽤 빠른 편이다. 또래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결혼했어도 아이가 없거나, 이제 아이를 낳아 체력 고갈을 호소한다. 오늘 이야기할 친구는 마지막 경우에 해당한다.
친구는 동갑내기 부부로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다. 신랑과 신부 모두 친구여서 축의금을 두 배로 내야 했지만, 축하와 기쁨의 마음도 물론 두 배였다. 40대에 들어서서도 아이 소식이 없기에 둘의 계획이 그러한가 보다, 덤덤히 여길 뿐이었다. 뜻밖의 소식이 들려온 건 작년이었는데, 40대 중반에 들어선 둘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이 키우는 데 있어서만큼은 선배로서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너희도 이 세계에 들어오는구나. 너희도 고생 좀 해봐라?. 농담이다. 둘이 결혼했을 적 들었던 축하와 기쁨의 마음은 그때의 두 배가 되었다. 그게 얼마만큼의 마음이지? 알 수 없다. 아이가 주는 기쁨은 쉽게 계량할 수 없다는 진실을 나는 지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이제 반년이나 됐을까? 친구들은 한창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엊그제 만나서는 “며칠 전부터 기적처럼 통잠을 자기 시작하더라”라는 말을 들었다. 그건 기적이 아니라 그저 자연일 뿐이지만, 둘에게는 충분히 기적일 수 있다. 아이는 커가면서 분유 대신 이유식을 먹을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식탁에 나란히 앉아 제가 좋아하는 반찬을 탐색할 것이다.
아이는 커가면서 기저귀를 떼고 똥오줌을 가릴 것이며 더 크면 프라이버시를 지켜달라 호소할지도 모른다. 옹알이하던 입에서 엄마 아빠란 단어가 나오고 후에는 기발하고 예쁜 말들이 그 작은 입에서 발화될 것이다. 이 모든 건 기적인 동시에 자연이다. 자연스러운 기적 혹은 기적 같은 자연.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아이 키우는 건 고귀한 일이니 참고 견디라는 말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다. 기적과 자연은 모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 키움의 기적에는 많은 사람의 노력과 열성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자연과 기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둘의 힘겨운 삶 자체라 해도 좋겠다. 둘에서 셋이 되려는데,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일 수밖에. 많이 힘들 것이다. 수없이 기쁠 것이다. 이 아이러니를 설명할 도리가 없다. 아직 나도 부모 됨의 과정에 있기에.
며칠 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올봄에 아이의 대부가 되어달라고. 녀석이 부모 됨의 고난을 조금 나누고자 하는 것 같다. 혼자만 힘들 수는 없다는 건가? 이 또한 농담이다. 나의 축하와 기쁨은 무한하게 커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