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2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 「오만과 편견」: 사랑의 학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을 조사하였는데,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다아시가 단연 1등으로 뽑혔다. 차갑고 불친절해 보이는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가족을 남몰래 보호하는, 낭만적이고 영웅적인 행위는 많은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두 연인은 사랑을 단순히 받거나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깨닫고 변화되어 가며 사랑을 배우게 된다.


갓난아이가 무수한 반복과 실수를 통해 모국어를 습득하는 것처럼, 사랑도 단숨에, 한 번에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사랑을 정적인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증가하며 성숙해질 수 있는 역동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내는 첫째 서간에서, ‘주님께서’ 사랑을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여 우리는 ‘흠 없이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1테살 3,12-13 참조)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간다. 흥미롭게도 성숙한 사람이 되어 갈수록 사랑의 깊이는 더해간다. 사랑의 깊이와 인간 성숙함의 깊이는 서로 매우 밀접한 관계이다.


소설의 원래 제목은 ‘첫인상’이었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서로에 대한 첫인상이 모든 갈등의 시작이다. 다아시는 무도회장에서 엘리자베스와 춤을 추라는 주변의 권유를 거절하면서 그녀의 외모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그럭저럭 괜찮지만, 내가 관심 가질 만큼 예쁘지는 않아.” 이런 모욕적인 말을 우연히 들은 그녀는 무도회 직후, “그는 몹시 불쾌하고 끔찍한 사람이며, 비위를 맞출 가치조차 없어”라며, 그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다아시는 그녀를 좋아하게 되며,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그에 대한 그녀의 부정적 판단은 바뀌지 않는다. “그가 내 자존심을 짓밟지만 않았더라면, 그의 자만쯤은 기꺼이 용서할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의 허영심을 상하게 한 그 모욕으로 인한 개인적 감정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다아시 집안 집사의 아들인 위컴이 다아시에 관하여 헐뜯는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다아시가 그런 나쁜 사람이라고 바로 평가해 버린다. 스스로 총명하다고 자부하는 그녀는 일방적인 한쪽만의 의견을 듣고, 그에 대한 부정적 판단을 고집하며, 다아시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다.


한편, 다아시의 엘리자베스에 대한 편견은 계급적 우월감과 피상적인 판단에서 시작된다. 첫 만남에서 그녀의 외모와 사회적 지위를 무시하는 태도는 첫 번째 청혼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억누를 수 없음’을 고백하는 청혼의 진실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엘리자베스에 대한 사랑보다는, 청혼을 결정하기까지 자신이 겪어야 했던 내적 갈등과 희생들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는 “나의 더 나은 판단, 가족의 기대, 그대의 열등한 출생, 나의 신분과 처지에 맞서 싸워”야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기중심에서 그녀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엘리자베스는 그가 마치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결혼의 승낙을 당연히 기대하는 태도에 “좌절하고 격분한다.”


다아사와 엘리자베스의 첫 만남 서로 참모습 보지 못하고 충돌


시간 지나며 성숙해진 두 사람 이기심 버리고 헌신적인 삶 선택


자기 중심 아닌 ‘타인 중심’ 될 때 진정한 사랑에 도달 할 수 있어


그러나 청혼을 거절당한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보낸 자기 성찰의 편지는 그녀가 바라본 자기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 후, 엘리자베스의 막내 여동생 리디아 사건을 그녀가 모르게 해결한다. 영웅적인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 마침내 두 번째 청혼에서 그는 사회적 계급과 우월감을 모두 버리고, “오직 당신만을 생각”한다고 말하며, 자기 중심에서 타인 중심의 사랑으로 변화된다. 오만한 아집에서 겸허한 자기 인식으로의 성장을 보여준다.


엘리자베스도 자기 성찰의 모습을 보여준다. 청혼을 거절한 후, 그녀는 다아시가 보낸 편지를 여러 번 읽게 된다. “그가 무엇을 말하든 강한 편견을 가지고” 읽으려 하지만, 여러 번 들여다볼수록 위컴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비참할 정도로’ 속았는지, 다아시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자신을 얼마나 눈멀게 했는지 인식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통찰력을 가졌다고 자부’하고‘ 능력을 지녔다고 자신 높이 평가’해 왔지만, 그것들이 ‘이성이라기보다 허영’이었음을 깨닫는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강도 높은 자기 성찰의 과정은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보다 더 객관적인 지식을 얻게 한다. 신분 사회의 우월감이나 편견에 얼룩진 사랑이 아니라, 상호 간의 성숙한 사랑은 바로 서로에 대한 객관적 지식의 확장으로 가능하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도록 기도한다.(필리 1,9)


당시 필리피는 작은 로마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로마의 문화적 영향 아래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사는 로마 식민지였다. 로마 문화에서 관계는 계급과 명예, 후원, 의무 등의 가치관에 기반하였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위계보다 상호 섬김을, 명예보다 겸손을, 상호 의무가 아닌 자기 헌신의 관계를 형성하도록 권고한다. 


로마의 문화와 가치관에 대항하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참된 가르침에 대한 지식과 분별력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잘못 적용되거나 오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서로에 대한 참된 지식을 인식함으로써 사랑에 도달한 것처럼, 필리피 신자들도 그리스도 십자가의 참된 지식을 깨달음으로써 서로에 대한 사랑이 더욱더 풍부해진다.


성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십자가를 ‘사랑의 학교’라고 표현하였다. 진실한 사랑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희생적인 삶을 묵상하고 깨닫고 배워간다는 의미이다. 이 ‘학교’에서 사랑은 위로를 주는 감정이나 영적 감미로움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겠다는 의지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섯 쌍의 부부는 오스틴이 살았던 영국 섭정 시대(1811~1820)의 결혼과 사랑의 여러 문제를 잘 보여준다. 낭만적 사랑은, 참된 사랑 보다는, 주로 돈, 명예, 사회적 지위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그러한 가치들에 기뻐하고 행복해하였다. 엘리자베스의 똑똑한 친구 루카스가 진실로 사랑을 할 수 없지만, 경제적 안정을 위해 콜리즈를 남편으로 선택한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오스틴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가장 이상적인 부부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섭정 시대의 가치관에 도전하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적 위로가 아니라, 치열한 자기 성찰을 통해 자기중심에서 타인 중심으로 변화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사랑을 배워야 했던 것처럼, 독자들도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을 배워간다. 그런 의미에서,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사랑의 학교이다.



글 _ 김치헌 바오로 신부(예수회·서강대학교 영문학부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6-02-1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2. 12

요한 1장 12절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