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많은 이가 묻습니다. “죽은 육신이 어떻게 부활할 수 있는가? 부활한 사람 모습은 어떠한가? 흔히 말하는 연옥은 어떤 모습인가?” 어떤 이들은, 마치 윤회설을 믿는 듯, 다음 생은 좀 다르게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 가르침에, 이 세상에 다시 오는 다음 생은 실상 없습니다. 영원한 행복(구원) 아니면 어둠이 뒤따를 뿐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아주 선명한 답을 줍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22)
죽은 후 부활한 사람의 모습을 세상 언어로 상세히 표현해 내기는 실제로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 안에서 ‘부활한 사람’ 모습을 찾아보는 일은 큰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
신약성경 안에서 죽음과 부활에 대해 가장 명쾌하게 설명하는 구절을 꼽으라면 다음을 들 수 있습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1코린 15,42-43)
사도는 죽은 이들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1코린 15,44) 사도는 설명을 이어갑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첫 인간)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1코린 15,49)
이제 창조의 세 가지 차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무(無)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 지속적인 창조(creatio continua), 새로운 창조(creatio nova) 등입니다. 지속적인 창조는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신 주님께서 지속적으로 피조물 세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시는 것을 이릅니다. 새로운 창조란 죽음에서 부활에 이르는 신비의 영역을 일컫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부활한(새로 창조된) 육체, 곧 주님의 자녀들이 도달하여 누리게 될 천상 신비의 모습을 이 세상의 육체와 대조시킵니다. 물질적이라 늙어가고 병드는 생로병사의 테두리에 갇혀 살아가는 가련한 육체가 있듯이, 천상 신비의 세계에 속해 영적이고 영광스러운 육체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하늘에 속한 몸체들도 있고 땅에 속한 몸체들도 있습니다.”(1코린 15,40)
묵시록 저자 요한은 구원받은 성인들이 천상에서 누리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명쾌하게 전해줍니다. “도성 안에는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가 있어… 그분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는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입니다.”(묵시 22,3-4)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 3,2)
흔히 사람들은 죽은 후에 겪게 될 연옥을 시·공간의 틀에서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마치고 죽은 다음 맞이하게 되는 삶의 모습은 어떨까요?
글 _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원로사목·성사전담, 성서주석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