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Purgatorium)’은 본디 라틴어 ‘Purgatio(정화)’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연옥 본연의 의미는 정화하는 곳 또는 정화 과정을 뜻합니다. 갇혀 있는 장소적 의미가 아니라, 지난날 나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되돌아보며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내 모습을 마음 아파하며, 주님께 또 이웃에게 저지른 거짓, 교만, 배반 등 부끄러움을 뉘우치고 속죄하는 정화 과정으로 보면 연옥에 대한 이해가 보다 수월할 것입니다.
독일 신학자이자 사제인 게르하르트 로핑크는 연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줍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궁극적으로 만날 때 하느님이 우리를 일생 사랑하시던 그 선하심과 사랑의 척도를 체험하는 가운데, 우리 눈이 우리 자신에 대해 스스로 열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 우리의 독선, 무정함, 냉혹함, 이기주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한평생 쌓아 올린 모든 자기기만과 환상이 일순간에 붕괴할 것이다. 우리 자신을 감싸고 있던 가면들이 벗겨질 것이다. … 이는 끝없이 고통스러운 일이며 … 우리 앞에서 찬란히 빛나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본디 존재했어야 할 참모습과 실제로 존재했던 모습을 동시에 바라보게 될 것이다. 심판은 바로 그러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연옥이다.”(「죽음이 마지막 말은 아니다」 44~45쪽, 이석재·신교선 신부 공역)
그때 비로소 나는 삐뚤어지고 일그러진 생전의 내 모습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심판이며 우리가 일컫는 연옥, 곧 정화 과정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 세상 나그네 살이 하는 동안, 욕심과 위선 등으로 일그러진 실제의 우리 모습과 동시에, 한없이 크신 주님 자비와 선하심과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로핑크는 말합니다.
그의 말대로, 각자의 죽음에서 나는 나 홀로가 아니라 나와 함께했던 모든 이와 함께 하느님께 나아간다고 봅니다. 세상에서 내가 함께했던 부모님과 형제자매, 배우자와 가족, 친척과 친구, 내가 돌보던 이들, 나를 위해주던 분들 모두가 마치 거미줄처럼 엮여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죽음을 통하여 우리 영혼만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 점을 사도 바오로가 분명히 밝혀줍니다. “나팔이 울리면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1코린 15,52)
로핑크는 이어갑니다. “죽음에서 ‘육신과 영혼’과 함께한 인간 전체가, 곧 자신의 온 생애와 더불어 자신의 세계와 함께 자기 생애의 고유한 자기 업적을 가지고 하느님 앞에 나아간다.”(「죽음이 마지막 말은 아니다」 54쪽)
이처럼 우리는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천상 영혼과 천상 육신으로 부활하여 천상에 걸맞은 지복직관의 세계에서 주님을 뵙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주님 품 안에서 우리보다 앞서간 모든 선조도 만날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내가 도움이 되어준 모든 이들, 또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게(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주었던 분들, 이웃과 이웃이 되어준 나라와 민족까지도 만나게 되어 다 함께 천상 축제에 참여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글 _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원로사목·성사전담, 성서주석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