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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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주파수를 맞춰요] 신학은 학문적 방법에 의한 신앙의 이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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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계시로부터 출발한 하느님에 대한 학문이다. 학문으로서 신학은 신앙으로 이미 받아들인 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이성을 사용하는 믿는 이들의 연구이다. 간단히 말해 신학은 학문적 방법에 의한 ‘신앙의 이해(Intellectus fidei)’인 것이다. 인간은 신앙으로 수용한 계시가 신비일지라도 그 내용을 알고자 하는 지성적 관심을 항상 가지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믿으면서도 인간 지력의 힘으로 더 정확하고, 더 충만하게 파악하려고 한다.


바로 이러한 지성적 탐구를 신학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앙을 이성화하려는 노력, 즉 신학이 필요하다. 신학은 생각하는 머리로써 하는 신앙인 것이다.


신앙이 없는 역사가가 그리스도교 계시의 사실들을 학문적으로 다루게 될 때 종교학이나 역사학의 차원을 넘을 수 없다. 신앙이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계시의 본질적인 내용과의 만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계시 사건들은 자연적인 종교현상들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이며, 이를 올바로 감지하기 위해 신앙이 필수적이다. 신앙은 말하자면 인식의 차원을 초자연적 차원으로 올려주며, 참된 의미의 신학을 가능하게 한다.


안셀모 성인의 “나는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는 바로 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이 없으면 가장 높은 것, 즉 초자연적인 것에 대해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믿음으로써 더 큰 앎에 이른다. 즉 하느님을 지복직관하게 된다. 고통 안에 행복이 있다는 것, 물질 안에 영이 있다는 것, 역사와 시간 안에 영원히 있다는 것, 세계 안에 하느님이 있다는 것을 우리 눈과 이성으로는 알 길이 없다.


우리는 믿음으로써 고통 안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세계 안에 하느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믿음으로써 초자연적인 것에 대해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안셀모 성인은 “신앙은 이해를 추구한다(Fides querens intellectum)”(안셀모 「프로슬로기온(Proslogion)」 참조)라고 말한다. 신학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즉 신앙의 대상을 이해하려는 신앙이다. 결국 신학은 신앙의 학문적 이해인 것이다.


신앙 없이 신학자는 신학을 전개할 수 없다. 따라서 신학은 하느님에 관한 학설만이 아니라 신앙에 의한, 신앙을 위한, 신앙의 행위이다. 신앙은 신학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신학의 중심이며 목표다. 신학은 신앙 안에서 태어나고 신앙 안에서 자라고 신앙 안에서 완성된다. 신앙 안에서 나온 신학 서적을 읽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어렵지만 1년에 한 권 정도 신학 서적을 읽으시기를 바란다.



글 _ 김석태 베드로 신부(대전교구 도룡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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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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