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이탈리아 밀라노와 생소한 이름의 코르티나담페초다. 우리나라로 치면 평창 같은 도시일까. 텔레비전 화면 너머의 설경은 아름다웠다. 간간이 들리는 우리 선수단의 활약도 멋졌다. 금메달 소식도 속속 들려오면서 열기가 서서히 오르는 듯하지만, 분명 예전 같지는 않다. 시차 때문일까. 시대가 변한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방송사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올림픽은 사상 최초로 지상파 3사(KBS, MBC, SBS)가 아닌 케이블 종편인 JTBC에서 중계했다.
방송 3사에서 모두 같은 종목을 중계하며 캐스터와 해설자가 목청껏 벌이던 필요 이상의 경쟁도 의문이었지만, 지상파 아닌 채널의 단독 중계 또한 허전하고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JTBC는 이번 올림픽뿐 아니라 다음 하계 올림픽과 월드컵마저 단독 중계할 요량이다. 그를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중계권을 샀다고 전해진다. 보편적 시청권을 침해한다는 논란과 과한 비용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있는 것 같다. 처음 진행하는 대형 이벤트 중계에 여러 경험 미숙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스포츠 팬에게 이러한 이야기는 정치 혹은 경제적 문제일 뿐이다. 선수가 단련된 몸으로 훈련한 동작을 수행하면 팬은 그 매력에 그저 빠져들게 된다. 규칙을 지키는 경쟁과 승부에 드라마 못지않은 재미와 감동을 얻고는 한다. 스포츠는 스포츠니까. 올림픽은 올림픽이고. 그 중계사가 지상파든 종편이든, 여럿이든 단독이든 정작 스포츠 앞에서는 큰 문제일 수 없다. 스노보드 선수의 멋진 기술에 감명받고, 쇼트트랙 선수의 날렵한 회전에 심장이 뛰는 것, 그것만으로 올림픽은 충분하지 않겠는가.
올림픽이 끝나면 패럴림픽을 한다. 신체적 장애인이 참가하는 올림픽이고, ‘나란한’, ‘대등한’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접두사 파라(para)와 올림픽을 합한 말이다. 장애인의 능력과 의지를 비장애인의 그것과 나란히 둔다는 뜻일 테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또한 패럴림픽이 ‘나란히’ 열린다. 휠체어 장애인의 바이애슬론, 썰매를 타고 진행하는 아이스하키 등을 볼 수 있다. 단독 중계권을 획득한 JTBC에서?. 아니 KBS에서.
놀랍게도 JTBC는 올림픽 중계권을 사면서 패럴림픽 중계권은 사지 않았다. 패럴림픽 중계는 공영방송사에 맡긴 것이다. 경영상의 이유였을까? 패럴림픽은 시청률도 낮고 광고도 붙기 어려워서? 이것을 올림픽 정신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이번 사안에서 방송사는 패럴림픽의 뜻을 저버렸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나란하게 놓여야 한다. 돈을 아무리 많이 썼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아니 돈을 많이 썼기에 더욱 그렇다.
패럴림픽이 신체적 장애인의 올림픽이라면 발달장애인의 올림픽은 따로 있다. 스페셜올림픽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에 평창에서 열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일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2025년 토리노에서 열렸다. 물론 아무 방송사도 중계하지 않았다. 진짜 보편적 시청권이란 무엇인지, 진지한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서효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