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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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의 객관적 기술은 치유로 나아가는 첫걸음

[박병준 신부의 철학 상담] 58. 체험의 현상학적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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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을 기술(記述)한다는 것은 
고통을 분석하는 작업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는 긴 여정이며
‘충만한 침묵’ 속에서 치유 완성


철학상담에서 체험을 객관적으로 기술(記述)하는 것은 치유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핵심은 주관적 체험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가이다. 현상학적 방법은 체험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그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현상학에 따르면 체험은 단순한 경험적 사실이 아니라 세계가 나의 의식 속에서 의미 있는 것으로 구성되는 ‘의미 부여’의 장이다. 그런 만큼 체험의 객관적 기술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현상학적 방법을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철학상담에서의 체험 기술은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첫 단계는 ‘형상적 환원’이다. 이는 경험 대상과 관련된 기술로서 경험의 개별적이며 우연적 요인을 가능한 한 제거하고 그 형상적 본질에 근접하여 기술하는 방식이다. 형상은 본래 철학적으로 본질적인 것을 의미해 왔는데 현상학에서도 유사한 뜻을 지니고 있다. 다만 현상학은 이를 전적으로 순수 의식의 영역으로 환원한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는 이 과정 안에서 특히 ‘자유로운 상상을 통한 변형’을 통해 의식에 주어진 내용의 우연적 요소들을 제거해 나감으로써 본질 직관에 이른다. 우리 체험의 내용 역시 많은 부분이 비본질적 요소로 가득하기에 이를 걸러내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기술하는 핵심이 된다.

다음 단계는 ‘현상학적(초월론적) 환원’이다. 이는 체험의 본질과 의미에 다가서기 위해서 의미 근거인 순수 의식의 영역으로 돌아가 기술하는 방식이다. 이때 핵심은 자기가 믿고 있는 기존의 인식을 괄호 속에 넣는 ‘에포케’(εποχ?/판단중지)이다. 철학상담에서 내담자의 경험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서 주목해야 할 것은 체험 자체가 아니라 바로 체험의 의미를 구성하는 순수 의식이다. 사실 내담자의 체험된 의미 세계는 그 자체로 실재하기보다는 주관에 의해서 구성된 의식 세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담자는 내담자가 그의 고유한 체험을 어떻게 의식하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관찰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도록 도와야만 한다. 이때 특히 살펴야 할 것은 우리가 속해 있는 문화와 전통, 그 안에서 알게 모르게 체득된 습관과 관습, 그리고 이념화된 사고의 패턴이 판단에 작용하는 만큼 기술에서 어떤 선입견이나 성급한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가이다. 그러나 체험의 표현은 불가피하게 언어·시간·역사성의 제약을 받는 만큼 내적 체험의 기술 또한 여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 단계는 치유의 핵심적 요소로서 ‘의미 부여와 함께하는 창조적 해석’이다. 세계와 사물은 결코 직접적인 방식으로 그대로 다가오는 법이 없으며, 항상 의식의 지향적 작용을 통해 의미화된 방식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세계와 경험 일체가 의식 속에서 의미 있는 것으로 구성되는 만큼 체험 기술은 의미 부여 및 의미 발견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철학상담에서 체험의 의미 부여와 발견은 최종적으로 의미 전체 안에서 행해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철학상담에서 내담자의 체험 기술은 궁극적으로 내담자가 겪은 경험이 치유를 위해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의미 체험’의 창조적 해석의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치유를 위한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대화는 깊고 긴 여정이며, 이 여정의 마침은 볼노브(1903~1991)의 말처럼 “충만한 침묵”이 흐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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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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