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길을 걷느라 지쳐서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요한 4,6 참조) 인간을 찾아오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겸손을 느끼듯이, 주님께서 한낮에 우물가에 계셨던 것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물을 길으러 온 죄 많은 여인을 만나기 위한 치밀한 자비로 보입니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8)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여인은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요한 4,9) 하고 반문하지만, 사실 그녀에게 물을 청하신 주님은 그 여인의 믿음을 목말라하신 것입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로마 5,2)라는 제1독서처럼, 주님은 갈증을 해소하려 물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여인 안에 오히려 생명의 물을 부어주기 위해 대화를 하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수’는 성령의 은총을 상징합니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신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4,13-14)라는 것은 우물물은 마셔도 다시 목마르지만, 성령의 은총은 영혼의 갈증을 영원히 해소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께서 예지력을 발휘해서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요한 4,16) 하고 말씀하십니다. 여인은 솔직하게 “저에게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지금 함께 사는 남편이 남편이 아니라는 것은, 그녀가 아직 참된 신랑이신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고 헛된 우상이나 집착 속에 살고 있음을 직면하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인의 수치를 폭로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참회로 이끌기 위해 그녀의 과거를 비추셨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바라보며 저희 조상들은 산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선생님네는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한 4,24)고 말씀하십니다.
사마리아인은 예배의 장소 ‘그리짐 산’에 집착했고, 유다인은 전통 곧 ‘예루살렘’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제 장소가 아니라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드리는 ‘마음의 상태’가 중요함을 선언하십니다. 영 안에서라는 것은 성령의 비추심을 뜻하며, ‘진리 안에서’라는 것은 그림자인 구약의 제사를 넘어 실체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배를 뜻합니다.
여인이 예수님께 그리스도라는 메시아의 오심을 안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요한 4,26)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곧바로 모세가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탈출 17,6) 했던 그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난 ‘주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요한 4,27-30 참조)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둔 것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그 여인이 이제 육체의 목마름을 해소하는 물동이를 버린 것은 더 소중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복음의 기쁨’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녀는 자기만 구원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즉시 주님의 소식을 전하는 사도들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 잡수십시오”(요한 4,31)하고 권하자, 예수께서는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 4, 34)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몸의 음식을 걱정했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을 위한 ‘영혼의 구원’에 굶주려 계셨습니다.
주님께 가장 맛있는 음식은 바로 길 잃고 지친 영혼이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영성은 ‘목마름의 전환’입니다. 세상의 우물은 마실수록 갈증이 나는 우물물이지만, 주님의 우물은 나의 내면에서 솟아나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며 우리도 참된 생명수를 맛본 사람이 됩시다. 과거의 물동이(집착)를 미련 없이 버리고,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의 기쁨을 전합시다. 그럴 때 우리는 모두 주님과 영적으로 대화하는 새로운 사마리아 여인 곧 사도들 중의 사도가 될 것입니다.
글 _ 곽승룡 비오 신부(대전교구 태안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