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들렀다 집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앉으니 어르신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신다. 미슐랭 스타 셰프가 ‘장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고 해서 빌려오는 중이었다. 어르신들이 내가 들고 있는 책을 보시더니 ‘장 담그려고?’라고 물으신다. ‘아유 근데 뭘 책까지 봐, 장 담그는 거 어렵지 않아. 그냥 메주에 소금만 넣으면 돼’라고 하신다. 올해 장은 담그셨는지 묻자 ‘요즘 누가 담가 먹어. 그냥 사 먹지. 이제 두 식구만 먹는데 장을 담그나’라고 답하신다. 엄청나게 쉽다는 장 담그는 이야기와 직접 담가 먹으면 맛있고 좋은데 지금은 먹을 사람도 없고 해서 안 담근다는 말을 남기고 버스에 오르신다.
나도 친정에서 장을 얻어다 먹을 때는 담글 생각을 안 했다가 2017년부터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모든 음식에 간장을 사용하는 내게 장 담그기는 일 년 살림으로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다.
찜 요리에서 중요한 양념이 바로 장이다. 명절이나 생일 등 특별한 날이면 우리 밥상에 빠지지 않는 메뉴가 바로 갈비찜 요리다. 최고의 음식재료를 이용해 그날의 밥상을 빛내는 주인공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음식이 바로 소 갈비찜이다. 상에 오르면 너나 할 것 없이 반가워하고 아주 좋은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대접하는 자리에서 우선 생각나는 음식재료가 바로 소고기다.
‘지구밥상’ 첫 편에서 우리는 소고기가 기후 문제와 얼마나 깊은 연관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소고기 1㎏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은 15톤,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60~90㎏이나 된다. 이런 사실을 알면 밥상에서 매일 마주하는 붉은 고기류, 특히 소고기 소비를 줄여야 할 필요를 절감하게 된다.
고기찜 요리에는 설탕과 과일 등으로 단맛도 많이 첨가돼 사람들의 입맛을 끌어당겨 뇌에 맛있다는 느낌이 각인된다.
고기 대신 채소만으로 맛있는 찜 요리를 하고 싶었다. 이게 가능할까? 도전이 시작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선한 채소와 좋은 장이다. 깔끔하고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좋은 간장이 필요하다. 해마다 엄마는 집에서 장을 담갔고, 그 장맛을 보며 컸기에 우리 장이 주는 깊고 은은한 짠맛과 짠맛 끝에 남는 감칠맛과 단맛을 안다.
물, 소금, 메주를 담가 간장과 된장으로 분리한 후 다시 발효의 과정을 거치면 햇장이라는 맑고 투명한 청장을 만나게 된다. 청장은 담근 지 일 년 된 장을 이르는 말이다. 맑은 색을 띠고 진한 짠맛을 낸다. 혀끝에 닿으면 짜다는 감각이 먼저 다가온다. 그러다 보니 이 간장을 국 끓이는데만 사용하게 됐다.
청장은 시간이 지나면 진한 검은색을 띤다. 달큼한 짠맛과 진한 감칠맛, 마지막엔 단맛을 남긴다. 이 간장을 우리는 진장, 즉 진간장이라 불렀다. 채소 찜을 하려면 이 진장이 필요하다. 설탕이나 과일을 넣지 않아도 간장이 스스로 은은한 단맛을 내어주니 조청만으로도 훌륭한 찜 요리를 완성할 수 있다.
음력 정월마다 장을 담그기에 올해도 장을 담갔다. 잘 띄워준 메주와 간수 빠진 천일염, 물만 있으면 맛있는 장을 담글 수 있다. 여기에 숯과 고추, 대추를 넣어준다. 숯은 장 안의 나쁜 냄새와 불순물을 흡착하고 고추는 살균 효과, 대추는 은은한 단맛을 보충한다. 붉은색의 고추와 대추는 잡귀를 물리쳐 장맛이 변질하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맛있게 익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2024년 12월 4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 그때 우리나라는 계엄으로 나라가 어수선했다. 이 경사스러운 날을 제대로 축하하고 알리지 못해 많은 분이 우리 장 담그기가 세계에서 인정받은 것을 모르고 지나쳤다. 지금 세계는 한국의 음식문화에 열광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한국 음식의 기본인 장에 대해 잘 알고 기록해야겠다.
간장·된장·고추장·막장 등 우리 음식의 본질인 양념을 잘 활용하고, 신선한 제철 음식재료만 있으면 맛을 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 단순한 진리를 모두 알아차리는 날까지 장을 담그고, 그 장맛을 음식에 녹이고 싶다.
올해는 나도 새끼를 꼬아 장독에 둘러주었다. 처음 하는 것이라 맘대로 되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이치를 터득하니 금세 꼬아져 신기했다. 금줄까지 두르고 나니 장독대가 제법 근사해졌다. 올해 장도 맛있게 익기를 기다리며 유리뚜껑을 덮어준다. 좋은 장이 있으니 맛있는 채소 찜은 이제 걱정 없다. 올해도 채소 찜으로 생일상 차리기 완성이다.
레시피 - 장
재료
메주 1말, 간수 빠진 천일염 4㎏, 물 20ℓ, 항아리, 숯 2조각, 마른고추 3개, 마른 대추 5개.
사전 준비
1. 메주 씻어 두기
2. 천일염 물에 녹이기
3. 항아리 씻어두기
장 담그는 순서
1. 항아리에 메주를 넣는다.
2. 준비된 소금물을 면보를 받치고 부어준다.
3. 장 안에 달군 숯을 넣는다.
4. 마른고추와 마른 대추를 넣는다.
5. 유리뚜껑을 덮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