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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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신앙체험수기] 장려상 -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찾아서

강남년(마리아, 마산교구 금산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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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제미나이 제작


6년 전 늦은 가을이었다. 당시 나는 항암과 수술 후유증으로 몸이 좋지 않아 산행을 하면서 체력을 회복하려고 했었다. 그날도 산에 올랐다가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해서 서둘러 하산을 하는 중이었다. 우산도 비옷도 없이 서둘러 내려오는 길목에 동네 성당이 보였다. 늘 스쳐 지나가던 건물이었는데, 그날은 팔을 벌리고 누군가를 안아줄 것 같은 높은 벽 앞쪽에 있는 성상의 모습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그 손짓 때문이었는지 비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처음으로 성당이라는 곳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미사가 한참 진행 중이던 성당 안 2단으로 나란히 정렬되어 있는 긴 의자의 맨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보았다. 맨 뒤에 앉으면 아무도 나를 눈치 채지 못할 것 같았다. 이렇게 눈에 띄는 등산복 차림이라도.

강론 중이던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하느님은 우리가 준비되었을 때가 아니라 가장 약해졌을 때 우리를 부르십니다.”

무슨 말씀일까?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말씀이 마음속에 덜컥 떨어져 내려앉았다.

‘나를 두고 하신 말씀은 아니실 테지. 나는 성당 사람이 아닌데? 나는 여기 안 보이는 구석에 앉아 있는데?.’ 신부님의 강론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소탈한 화법에 마음이 편했다.

산행 가는 길목에 있는 그 성당을 나는 매주 들렀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성당에 들어가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미사에 참여한다기보다 그 맨 뒷자리에 앉아 있기 위해 성당에 갔다. 신부님의 강론이 시작되기 전까지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기도하는 방법도 몰랐고 성당 예식과 절차도 몰랐지만, 다른 사람들이 일어서면 따라서 일어서고 앉으면 따라 앉았다. 독서와 강론 시간에 다들 책을 보고 있기에 「매일미사」 책도 따라 사보았다. 앞사람의 등을 유심히 바라보며 “아멘”도 따라 말해보았다. 매번 뒷자리에 앉아 있으니 자릿세라도 내야 할 것 같아서 사람들을 따라서 봉헌금도 내보았다.

어느 날, 나는 여전히 그 긴 의자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 한 어르신이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성사 보실 건가요?” 그때 처음으로 성사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 그렇지만 성사가 뭔지 몰라서 나름 정중하게 대답했다. “어르신 먼저 하세요.”

어르신은 내 뒤에 있는 두 개의 문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갔고 어르신이 들어가자 그곳의 불이 켜졌다. 너무나도 무지했던 나는 그곳을 화장실로 생각한 채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봤다. 늘 앞만 보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신부님이 그곳을 들어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터였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내가 늘 앉던 그 자리는 신부님께서 미사 전 고해소에 들어가기 전에 앉으시는 자리였고 암묵적으로 신자들이 양보하고 있던 자리였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던 나는 그곳이 화장실 앞이어서 사람들이 앉지 않는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가끔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전 치료에서 한참 무균실 신세를 졌던 기억에 사람들을 조금 피하고 있었다. 선뜻 말을 걸어 주셨던 선한 신자분들에게 나는 벽을 치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성당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잘 알지 못하면서도 그 자리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느님을 알지 못했던 때였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는 느낌만은 어렴풋이 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매주 독서와 강론을 통해서 말씀을 조금씩 전해 들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예수님이 곧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65년간 교회와 인연이 없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초보적인 궁금증도 생겨났다.

‘하느님은 정말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시는 분일까?’

아직 스스로에게도 ‘성당을 다닌다’고 하지 않고 ‘성당에 앉아 있다가 온다’고 하고 있던 나는, 신자분들에게도 신부님께도 말을 걸기가 멋쩍었던 터라 이런 궁금증을 한가득 쌓아가며 성당에 ‘앉아 있으러’ 매번 가고 있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본당 신부님께서 조심스럽게 말을 거시며 세례를 받지 않겠느냐고 물으셨다.

“세례를 받기 전과 후가 차이가 있나요?”

나의 당돌한 질문에도 신부님께서는 웃으시며 성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몸으로 오신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때의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겁이 났다. 당시 나는 병으로 인해 음식 하나도 조심하던 때였고 밀가루 음식은 전혀 먹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밀로 만든 성체는 받아 모실 수 없을 것 같다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엄한 말들이 내 입에서 마구 튀어나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지한 말이었는지 모른다. 거룩한 하느님의 몸을 앞에 두고 그것을 밀가루로만 생각했으니 말이다. 몰라서 한 말이었고, 몰라서 지은 죄였다.

그렇게 세례 이야기는 잠시 멀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성당에 나왔다. 잘 모르면서도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고 싶었다. 그러다 얼마쯤 지나 다시 세례를 권유받았다. 이번에는 확신이 있어서라기보다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비가 오던 날 처음 성당 안으로 나를 불렀던 성상의 하느님 손짓을 참 좋으신 신부님을 통해서 느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세례를 받기로 했다.

강 마리아. 나는 예순여섯에 강 마리아로 다시 태어났다. 세례를 받고 났지만 모든 것이 단번에 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몇 개월이 지나고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성당에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겨우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데 성당을 나갈 수 없는 상황이, 하느님을 뵈러 가는 길이 막히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여 신부님께 여쭤봤더니 성경을 읽으라고 권해주셨다. 성경이 곧 하느님이자 가르침과 말씀이라고 하셨다.

사전보다 두꺼운 책, 성경. 나는 왜 성경을 읽을 생각을 못 했던가? 성경을 읽으면 명확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성경 말씀 하나하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세속적인 논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투성이었다. 성당에 다니는 지인에게 연락해가며 겨우겨우 1년 만에 1독을 끝낼 수 있었다. 2독으로는 신약을 중심으로 신약 복음서와 바오로 서간 등을 읽으면서 공부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성경 속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오히려 궁금증만 쌓여가고 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고 성경을 완독했는데도 나는 왜 아무것도 모르는가? 이 갈증이 나를 말씀으로 이끌었다. 유튜브를 찾다 보니 가톨릭평화방송을 비롯해 많은 신부님의 강론이 있었고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듣는 날도 많아졌다. 강론을 듣다 보면 자주 같은 말씀이 반복되었다. “성체조배를 해보십시오.” “미사보다 큰 기도는 없습니다.” 그 말이 처음에는 잘 와 닿지 않았는데, 또 한 번 고백하자면 성체조배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당 안에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성체조배를 시작했다. 잘은 모르지만 감실 앞에 앉아 보기로 한 것이다. 시간은 잘 가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밀려들었다. 아픈 몸, 치료 일정, 가족 걱정, 세상 일들이 쉼 없이 떠올랐다.

‘기도가 이렇게 어려운 건가?’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냥 자리를 떠나고 싶어졌다. 그래도 일단 정한 시간만큼은 앉아 있기로 했다. 잘 집중하지 못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해도, 감실 앞에 머무는 것 자체가 좋다고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겨울 내내 하루에 30분씩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이 없는 시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면 더 조용하지 않을까, 아무도 없는 시간에 혼자 앉아 있으면 덜 산만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새벽에 성당을 가기 시작했다. 새벽 3시, 감실 앞에 앉으면 낮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흘렀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때도 나는 여전히 기도를 잘하지 못했다. 분심은 여전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날도 많았다. 그래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만은 기다려지기 시작했고, 내가 찾고 있던 것이 ‘잘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었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새벽 3시면 성당으로 향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굳은 결심을 한 것도 아니었다. 2시 30분이면 눈이 떠졌고 몸이 먼저 움직였다. 비가 오는 날도 눈이 오는 날도 예외는 없었다. 아파서 서울 병원에 가야 하는 날에도 새벽 버스를 타기 전 먼저 성당에 들렀다. 치료 때문에 서울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할 때에도 병원 원목실이나 근처 성당을 찾아 성체 앞에 앉았다. 그 자리에 앉지 않으면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 것 같았다.

기도를 잘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분심이 많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두 시간을 보내는 날도 있고 아직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그런데 내 삶에 조그만 변화들이 하나둘 스며들기 시작했다. 놀기만 하는 모임은 점점 마음이 가지 않았고, 그렇게 좋아하던 텔레비전도 어느 순간부터 켜지 않게 되었다. 천 원도 아끼던 내가 성당에 필요하다는 말이 들리면 계산하지 않고 내게 되었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옷을 사주고 누군가 아프다 하면 먼저 마음이 쓰였다.

내 안의 성격도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아프면 주위에 짜증부터 냈었는데,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떠올리며 참는 횟수가 많아지게 되었고 늘 부정적으로만 보이던 일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를 설득한 것도 가르친 것도 아닌데, 성체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내 마음의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지난 추석, 가족들이 모여 앉아 모두가 보고 싶어 하던 임영웅 콘서트 방송을 보던 날이 있었다. 나도 보고 싶었지만 성경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서 결국 울면서 방으로 들어가 성경을 펼쳤다. 그 일을 두고 아이들은 그렇게 울 정도면 같이 보지 그랬냐고 아직도 나를 놀린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나에게 ‘보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었기에 더욱 소중했다.

성당 안 자매들은 내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고, 성당 밖 친구들은 내가 예수님께 미쳤다고 했다. 어느 쪽 말이든 상관없었다. 나는 내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체조배는 나를 특별하게 만들지 않았다. 다만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하느님 앞에 나를 내려놓게 했다. 그 시간이 쌓여 어느덧 5년이 되었고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고 내가 받은 은총에 대한 응답이었다.

 
구글 제미나이 제작


어느 날은 성체 앞에 앉아 있다가 복음이 더 이상 나 혼자만의 위로로 머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하느님을 만나서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었지만, 항암을 받을 때, 수술을 받을 때, 응급실에서 사경을 헤맬 때에도 하느님을 알고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이 뒤늦게 밀려왔다. 내 평생 가장 후회되는 일이 하느님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것이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하신 당부가 그때는 유난히 또렷하게 마음에 남았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하셨는데 그 땅끝이 꼭 먼 곳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나에게 주어진 가장 가까운 자리, 가족과 오랜 친구들, 신앙에서 멀어져 있던 이들부터가 내가 서 있는 땅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 먼저 그들 곁에서 살아내는 쪽을 택했다. 복음은 말보다 삶으로 먼저 건네질 수 있다는 것을, 그분께서 성체 앞에서 차분히 가르쳐 주고 계셨다.

남편은 평생 신앙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기독교 재단과 관련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안 좋은 기억이 있었는지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성당에 다니는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함께 가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고 나 역시 먼저 권하지 않았다. 괜히 설득하려 들면 오히려 마음이 멀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매일 새벽, 성체조배를 위해 성당에 다녀오는 일상을 그대로 살아갔고 남편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어느 날, 남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성당에 가? 새벽마다? 몸도 안 좋은 사람이?. 힘들지 않아?”

남편의 질문에는 비난도, 호기심도, 설득의 의도도 없었다. 그저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성당이 좋아서 가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만나는 예수님이 좋을 뿐이라고. 이 말은 설명이라기보다 고백에 가까웠다. 나 자신도 아직 그 마음을 온전히 말로 옮길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왜 좋은지,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말로 풀어낼 수는 없었다. 그분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좋았고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다시 정돈된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얼마 뒤 아무 예고도 없이 남편이 말했다. 한 번 같이 가보자고. 특별한 이유도 결정적인 계기도 없었다. 남편은 성당에 나오기 시작했고, 내가 그랬듯이 어느새 그 자리에 익숙해졌고 세례를 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마리아와 요셉이 되었다.

신앙에 대해 길게 말한 적도 없고 성경 말씀을 들이민 적도 없었기에 그 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하느님께서 직접 부르셨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요즘 우리는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문을 낭송하고 미사를 간다. 물론 남편은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성경 말씀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따지고 들고 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음이 나는 이런 상황이 되면,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요셉 씨, 우리 그냥 성경 큰 소리로 읽읍시다. 그리고 말씀을 믿으면 돼요.”

딸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닮아 고집이 센 딸은, 흔히 말하는 가방끈이 긴 딸은 엄마 말을 순순히 따르는 타입은 아니다. 성당을 다니는 엄마를 응원해줬지만, 본인이 하느님을 알아가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봄날, 전화로 하느님은 어디 계시냐고, 왜 성당에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는 만큼만 답했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다 딸도 동네 성당에서 입교하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가족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말씀을 조금씩 배워갈 무렵 나는 레지오 마리애에 참여하며 곁에 머무르는 신앙을 실천하려고 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라기보다는 이 은총을 혼자만 품고 있기에는 마음이 불편해지는 감각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먼저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신앙 이야기를 꺼내기보다는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묻는 쪽을 선택했다. 성당에 오기까지의 망설임, 다시 멀어지게 된 이유, 혹은 아직도 설명하기 어려운 거리감에 대해 묻고, 듣고, 판단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앉아 있어 주는 일이었다. 방향은 언제나 하느님께서 제시해주심을 알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자연스럽게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이어졌다. 오랜 친구들 중 많은 이들은 나보다 훨씬 먼저 하느님을 알게 되었지만 냉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동창 모임 식사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앉아 큰소리로 성호경을 그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불러주며 하느님 앞에서 그들이 받은 은총과 믿음을 기억했다. 머뭇거리던 친구들도 하나둘 소리 내며 성호경을 그었고, 그들은 그렇게 하나 둘 교회로 돌아오고 있었다.

성당 공동체 안에서도 비슷한 시간이 있었다. 작년 초, 세례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자매가 눈에 들어왔다. 늘 혼자 다니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성당 생활도 아직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가벼운 이야기로 웃기도 하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미사와 성당 생활에 대해 물으면 아는 만큼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어느 날 그 자매는 남편이 투병 중인데, 자신이 성당에 나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 늘 불편한 마음으로 겨우 미사에 온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남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어서 포기하지 않고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그리고 나 역시 투병을 겪으며 하느님 앞에 서 있었던 시간과, 누구도 살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나누었다. 사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을 꺼렸었다. 그런데 나를 닮은 이 자매에겐 그 이야기들이 술술 나왔다. 이후 우리는 종종 함께 기도했고 결과를 앞당기기보다 하루하루를 하느님 뜻 안에서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뒤 성당에 나오는 것을 말리던 그 자매의 남편도 성당에 나오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 세례를 받았다. 또 한 번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는 곁에 머물며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자리가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돌아보면 성체조배는 나를 종교인이 아니라 신앙인으로 만들어 준 시간이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하느님 앞에 나를 내려놓게 했고, 말씀을 생각하며 내 말과 선택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알게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천천히 배워가는 시간이었다. 하느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삶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더 많이 말하기보다 덜 판단하게 되었고, 앞서기보다 기다리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 신앙이란 결국 하느님을 설명하는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는 태도라는 것을 배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흔둘, 나는 여전히 서툰 신자이고 나이 많은 아기이다. 하느님께서 내게 맡기신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조금씩 찾아가며 하느님 앞에 머무는 자리를 떠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요즘 나는 성경 10독 중인데, 오늘도 성경의 이 두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

이 말씀들은 외침이라기보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나를 다시 바로 세우는 문장에 가깝다. 성당의 마당만 밟고 지나가는 신자가 아니라, 말로만 “주님, 주님”을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그분을 경외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성체 앞에서, 그리고 일상의 자리에서 이 마음을 조용히 되새기며 하루를 연다.

“주님, 주님.” 이 고백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강남년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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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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